◎마중나온 제자·동창과 반가운 해후/“처음본 서울 감개무량하다”/방탄복 입은듯 양복 앞뒤 “불룩”황장엽 비서와 김덕홍 여광무역 총사장은 20일 건강한 모습으로 성남 서울 공항에 도착, 67일간의 망명 여정을 마감했다. 황비서는 감격보다는 여유가 느껴지는 모습으로 트랩을 내려와 『남은 여생을 전쟁방지와 평화통일을 위해 보내겠다』고 말했다.
○…황비서를 태운 필리핀 민항 특별기 에어 필리핀 보잉 737 전세기는 우리 영공에 들어 올때부터 우리 전투기들의 호위 유도를 받으며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특별기는 5분가량 활주로를 선회한 뒤 공항청사 바로 앞에 멈췄다. 군청색 양복차림인 황비서는 세번째로 트랩에 나서면서 곧바로 양팔을 들어 「대한민국 만세」를 삼창했다. 황비서는 양복 안에 방탄재킷을 착용한듯 양복 앞뒤가 불룩하게 솟은 모습이었다. 필리핀 보안당국의 호송책임자인 리바르네스 준장은 트랩밑에서 가디야 주한 필리핀대사에게 황비서의 신병을 인계했으며, 가디야대사는 다시 이병기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에게 신병을 넘겼다.
○…기자회견장에서는 황비서와 평양상고 동창인 유창순 전 국무총리와 전중윤 이북5도민회장, 임노춘 평양상고 동창회장이 황비서 일행을 환영했다. 북한 외교관, 외환딜러 출신으로 각각 96년 1월, 95년 12월 귀순한 현성일(38)·최수봉, 최세웅(36)·신영희씨 부부는 꽃다발을 전했다. 임회장은 『형님 얼마나 고생많으셨습니까』, 최씨는 『건강하셨어요』라고 인사하며 황비서를 반겼다. 황비서는 특히 현씨 부부에 대해서는 순간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현씨와 최씨부부는 황비서가 김일성종합대 총장 시절 각각 영어과, 독일어과 학생이었고 평양 중구역 러시아 대사관 앞 18층짜리 간부 아파트에서 황비서와 이웃으로 생활했다. 황비서는 당비서들이 사는 1현관, 두 부부는 제6현관에 살았다. 현성일씨는 『직접 강의를 들은 적은 없지만 69∼72년 보통강 구역 신원동 아파트에도 같이 살았기 때문에 알고 지냈다』고 말했다. 최세웅씨도 『런던에서 외환딜러로 일할 때 황비서가 찾아와 안내해 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황비서는 상오 11시55분 기자회견장에 마련된 연단에서 안주머니에 넣어둔 「서울도착 인사말씀」을 거의 막힘 없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읽어내려 갔다. 황비서는 회견에서 『서울에 도착한 마음은 한마디로 감개무량』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황비서는 『갈라진 조국의 어느 한 부분만을 조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귀순·망명 등의 표현을 일절 사용치 않았다. 그는 중국 체류 당시에도 망명 등의 표현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황비서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도 『내가 어떻게 일하느냐에 따라 남북관계에 대한 영향도 달라질 것』이라고 받아넘기는 등 여유를 보였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황비서 일행은 공항청사 앞에 대기중이던 승용차에 분승, 안가로 직행했다. 황비서는 서울2크 8713 그랜저, 김씨는 서울2즈 8568 포텐샤에 탔으며 승용차 5대와 봉고 2대, 중형버스 1대, 의료차량 1대가 동행했다.<김병찬 기자>김병찬>
◎서울 도착 인사말씀<전문> /“낙원 장담하던 나라가 빌어먹는 나라 전락/전쟁준비 몰두 북조선 개혁·개방길로 나서야…” 전문>
나는 이번에 갈라진 조국의 북을 떠나 남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나의 청원을 허락하여 주고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돌려주고 따뜻이 맞이하여 준 데 대하여 대한민국 정부에 충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나를 뜨거운 동포애의 정으로 끌어안아 주고있는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나의 문제를 국제관례에 따라 처리해준 중국과 비율빈(필리핀) 정부에도 감사를 드린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은 벌써 반세기 이상이나 분열의 고통을 겪고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나의 삶의 터전이었던 북조선은 많은 모순과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이미 희망을 잃은 지 오래 되었다. 올바른 생각을 가진 자는 그것을 표현할 길이 없으며 오히려 견제와 감시 속에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북조선은 사회주의와 현대판 봉건주의, 군국주의가 뒤섞인 기형적 체제로 변질되었으며 경제는 전반적으로 마비상태에 들어가고 있다. 인민들은 기아에 신음하고 있으며, 북조선 당국은 드디어 국제사회에 구원의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건설하여 놓았다고 호언장담하던 나라가 빌어먹는 나라로 전락되었다.
이같은 사태는 북조선 정권의 그릇된 정책이 빚어낸 후과이다. 북조선은 개혁개방을 비사회주의 길이라고 견결히 배격하고 있으며 남조선과의 대화를 거부한 채 무력적 힘의 대결만을 추구하고 있다.
오늘 남북간의 대립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간의 대립이 아니라 봉건독재와 자유민주주의의 대립이며, 봉건적 군국주의와 자본주의적 경제주의의 대립이며, 전쟁과 평화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북조선 당국은 남북간의 대립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으로 규정하고 남한을 계급적 원수로 간주하면서 남조선 해방의 기치 밑에 무력통일 방침을 정당화하려고 모든 힘을 다 하고 있다.
북조선 당국이 인민들을 굶어죽는 상태에 두고서도 개혁개방을 기어이 거부하고 전쟁준비에 계속 몰두하고 있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은 명백하다. 이제 북조선은 수십년동안 전력을 다하여 키운 막강한 무력을 사용하는 길밖에 없다고 보고 있는 것같다.
이 모든 조성된 엄중한 사태를 놓고 수십년간 신임 받으며 지내온 북조선 당국의 고위간부로서, 내외에 많은 벗을 가지고 있는 학자로서, 사랑하는 가족과 많은 친우를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 생각은 끝없이 복잡하고 고민은 비길데 없이 심각하였다.
그러나 모든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다 합쳐도 7,000만 우리 민족의 생사운명과 바꿀 수 없다는 양심의 명령을 어길 수 없었다. 출로는 오직 남쪽 형제들과 손잡고 전쟁을 막아보는 길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되어 대한민국으로 오게 되었다. 이 기회에 나는 북조선 당국이 남조선 혁명노선을 버리고 헐벗고 굶주리는 주민들을 기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줄 것을 진심으로 호소하는 바이다.
나는 이미 민족앞에 큰 죄를 지었으며 부끄럽기 그지없다. 이 죄는 그 무엇으로도 보상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며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나마 조금이라도 죄를 씻고 죽을 수 있겠는지 그것이 걱정이다.
그러나 남쪽 동포들이 허락만 해준다면 힘을 합쳐 전쟁도발을 막고 우리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마지막 힘을 다 바침으로써 조금이나마 민족앞에 속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처음으로 유서깊은 역사의 도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보는 심정은 감개무량하여 그동안 민족의 영예를 떨치기 위하여 많은 일을 하여온 남쪽 형제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감사합니다. 황장엽. 1997년 4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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