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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숲’을 만들자/우종천 서울대 교수·물리학(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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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숲’을 만들자/우종천 서울대 교수·물리학(아침을 열며)

입력
1997.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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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30회 과학의 날지난 5, 6년 동안 세계은행 자문위원으로 있으면서 동남아 몇개국의 경제개발계획 수립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일이 있다. 이들은 한국을 본보기로 하고 있었다. 외국 기술 도입에 의존하는 한국 방식은 동남아 국가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원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한국을 능가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말레이시아는 「비전 2020」이라는 25년간의 장기계획을 수립하면서 선진국 진입에 대비하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천연자원이나 자연조건에서 우리보다 유리한 나라들이 4반세기를 내다보고 계획을 세우는데 우리는 어떠한가. 선진국형 과학 기술체계로 돌입하는데 준비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고 그 결과 외국시장을 놓치는 결과마저 초래하고 있다.

우리의 연구개발능력은 체계적인 면에서 한계에 왔다. 기술이란 이제까지 외국에서 도입해 쓰는 것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기업은 물론 정부에서도 창조적인 연구에 대한 지원을 꺼려했다. 외국에서 비슷한 연구 사례가 없으면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이다. 말은 선진국형의 창의적 연구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모방식 개발에 안주하려고 한다. 최근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연구개발에도 벤처투자가 있어야 한다. 기업에 투자하듯이 위험을 무릅쓰고 창의적인 연구에 투자를 해야한다. 벤처기업은 벤처 연구개발의 부산물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제까지 우리는 외국서 도입한 기술을 온실속의 화분에 길렀다. 앞으로는 과학기술을 들로 옮겨 숲을 만들어야 한다. 화분에서 기른 나무는 빨리 자라고 꽃도 크게 핀다. 그러나 자생력이 없다. 연속성이 없고 발전성이 없다. 이제는 기술의 나무들이 스스로 새끼를 치고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국내 최고의 반도체 기업주가 20년전에 반도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당시 국내에서는 여건이 안돼 미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외국과학자를 고용해야 했다. 이렇게 외국에서 개발된 기술을 이식한 것이 현재 국내의 메모리산업이다. 그러나 이 기업주는 개발이 성공하기도 전에 그 기술이 어떻게 하면 국내에 정착할 수 있을가를 먼저 걱정하였고, 연구개발 인력부터 우선적으로 챙겼다.

국내 반도체가 불황이라고 하나, 세계 반도체 시장은 연 15∼20%의 성장을 지속하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이 불황인 것은 메모리 칩이라는 화분에만 매달려 숲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 정부의 과학기술 연구개발비가 3조원으로 작년보다 5,000억원이나 증가했다. 일본의 경우 연구과제 도출과정에서 내용과 업무분담을 위해 기획 단계에서 2, 3년씩 준비를 한다. 자체의 연구 인력을 점검하고, 인프라 등 구조적인 여건도 챙긴다. 그리고 제목과 연구예산을 논한다. 예산확보를 위한 수단으로써 연구개발비 배정이 이뤄지는 우리 풍토와 많이 다르다.

과학기술 혁신을 위한 특별법도 제정한단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1년동안 과기처 장관을 네분이나 모셨다. 과기처 장관자리는 하나의 감투이기보다는 이 나라 경제의 장래이다. 40일짜리 장관이 문민정부가 생각하는 과학기술이 아니기를 바란다. 정부출연연구소는 젊은 우수인력을 충원하지 못하여 야단이다. 아직도 과학기술인력이 태부족인데 두뇌가 일할 자리를 정부의 인원 감축 방침으로 묶어버리는 것은 말이 안된다.

다시 맞는 과학의 날(21일)이다. 어려울 때 과감한 투자로 성공한 사례가 반도체 산업이다. 성공의 훌륭한 본보기가 우리 가까이 있다. 올해의 연구개발비는 한보사건으로 익숙한 「조」단위의 액수이지만 그 투자는 한보철강같이 되지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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