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와 5·18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내려짐으로써 자꾸만 바람결에 되넘겨지고 되넘겨지고 하던 우리 현대사의 책장을 이제야 바로 넘기게 되었다. 실로 17년만이다.그동안 우리는 과거에 발목잡혀 전진의 걸음을 절뚝거려왔다. 현대 정치사의 여한때문에 우리 사회가 안녕하지 못했다. 그 아물지 않은 상처에 나라가 무시로 통증을 겪어야 했다. 비록 진실이 완벽하게 해명되지는 않았지만 역사의 족쇄가 풀리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나간 역사로부터의 해방이다. 대법원의 확정판결은 다른 어떤 성과보다도 이 점이 값지다.
온 나라를 진감시킨 「세기의 재판」의 마감으로 이른바 「역사 바로세우기」의 장을 덮으면서, 그러나 그 역사 정리 자체를 잠시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역사는 법정이다. 과거를 심판하는 것은 역사다. 그러나 법정이 역사인 것은 아니다. 사법적 판단이 반드시 역사적 판단이라 할 수 없다. 법정은 항상 당대의 것이므로 「역사적 거리」를 모른다. 어느 시대이든 어느만큼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아야 한다. 역사는 원시안자의 것이다. 멀리서 볼수록 잘 보인다. 이 거리가 적어도 얼마만큼이라야 하느냐에 대해 「대중의 반역」의 저자인 오르테가는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보이지 않는 거리」라고 했다. 파스칼이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 낮았더라면 지구의 표면은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한 말에 빗댄 것이다. 우리의 「역사 바로세우기」는 클레오파트라의 코를 너무 코 앞에 둔 것이 아니던가.
또 역사가 랑케는 과거의 역사는 그 당시의 척도로 재어야지 오늘의 척도로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하나의 역사적 현실은 현재의 시대감각에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상황을 토대로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인식의 기본 룰이다. 「역사 바로세우기」는 이 룰이 지켜졌던가.
「역사적 재판」의 과정에서는 몇몇의 소수의견에 주목하게 된다. 법원의 판결은 5·18특별법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이 법의 소급입법 여부에 대해 헌재는 합헌 결정을 내리기는 했지만 재판관 9명중 5명은 법원이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할 경우 소급입법에 해당되어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이때 이들이 결정문에서 밝힌 견해가 경청할 만하다.
『헌정질서의 파괴를 범한 자들을 엄벌함으로써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려는 뜻이 아무리 숭고한 것이라 하더라도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법치주의 내지 적법절차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헌법에도 명기되어 있지만 우리나라 형법은 제1조 제1항이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한다」라는 것이다. 그만큼 형벌불소급의 원칙이 강조되어 있다. 랑케의 역사불소급의 원칙이란 이 형법정신의 연장이다.
대법원의 판결에서도 대법관 3명은 5·18특별법을 공소시효가 완성된 범죄에 대해서는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그중 1명은 『고도의 정치문제를 법원이 새삼 사법심사의 일환으로 그 죄책여부를 가리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어려운 수학문제의 정답은 다수결이 아니다. 고도의 정치적 문제는 고등수학같은 것이다.
성공한 쿠데타에 대한 세계 희유의 사법적 심판은 다시는 무력에 의한 헌정질서의 문란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헌정의 중단은 단연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새삼 생각하게 되는 것은 쿠데타를 반쿠데타법으로만 막을 것이 아니라 쿠데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권의 부실도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쿠데타를 유발할 수 있는 악정이나 실정은 쿠데타만큼 국가에 위해를 가하는 것이다. 그 악정이나 실정을 무슨 특별법으로 다스릴 것인가.
두 전직 대통령을 한꺼번에 법정에 세운 전대미문의 재판은 무엇보다도 권위의 파괴라는 부작용 때문에 국가적 고통이 크다. 우상을 쓰러뜨리는 쾌감이 국민감정의 모두 일 수 없다. 대통령의 권위의 추락은 동시에 나라의 권위의 하강이다. 나라의 권위의 확립이 역사의 정립만큼이나 중요하다. 현재의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전례없는 집중사격도 기실 그 권위부정의 선례가 자초한 것이다. 앞으로 또 언제까지 이 악순환이 되풀이 될는지 나라는 불안하다.
「대재판」은 우리 현대 정치사의 반목과 갈등의 앙금을 말끔히 씻고 국민적 대화해와 국가적 대평화의 출발점이 될때 그 과정의 모순이나 이의들이 극복될 것이다.<본사 논설고문>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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