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와 검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를 쓴 적이 있다. 방송이 되고 나서 받은 비난 중의 하나는 깡패를 너무 미화시켰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철없는 초등학생들이 장래 희망을 깡패라고 말했다고 해서 더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솔직히 대본을 쓴 사람으로서 당황했다. 아니 어쩌자고 깡패를 그렇게 멋있게 그렸을까 해서 스스로의 작품을 다시 읽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그린 깡패는 남을 때린 만큼 얻어맞기도 했고 결국에는 형장에서 사형당하는 인물이었다. 이런 인물이 멋있다고 장래 희망으로 삼는단 말인가.
요즘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멋있는 인물(?)들이 거론되고 있다. 이를테면 장세동 같은 사람이다. 그가 저질렀던, 그래서 법의 심판까지 받게되는 모든 일들은 어느새 잊혀지고 그는 의리의 인물이 되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또 과거의 독재자가 갑자기 가장 훌륭했던 대통령이 되기도 한다. 복제하고 싶은 인물 1위를 차지하기도 하고 텔레비전에서는 시민들이 스스럼없이 의견을 밝힌다.
『그만한 대통령도 없었어요. 그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사는것 아니에요? 지금 나라꼴을 보면 그런 사람이 하나 나타나야 되는데…』
이것은 드라마에 나온 깡패를 영웅시하는 것과는 비할 바 없이 무시무시한 현상이라고 느껴진다. 왜 그럴까? 어째서 사람들은 그들이 저지른 끔찍했던 일들을 다 잊어버리고 그저 카리스마 하나에 연연해하는 것일까. 고개만 까딱 잘못 돌려도 혹은 술자리에서 말만 얼핏 잘못해도 남산행이던 시절은 그렇게 먼 옛날의 얘기도 아니다. 그 시절엔 청문회가 뭔지도 몰랐다. 사회전반적으로 치매 전염병이라도 돌고있다는 걸까.
『영웅이 없어서 그래』라고 누군가 말했다. 어쩌면 그게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드라마에서 깡패의 대칭으로 내세웠던 정의로운 검사는 깡패만큼 영웅스럽지가 못했다. 요즘 계속되는 청문회에서 입다문 철면피들을 상대로 속이 시원한 질문을 해대는 영웅은 없었다.
우리는 모두 영웅이 그립다. 깡패나 범법자가 아닌 영웅이 빨리 나타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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