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가에는 「크렘린 클럽」으로 불리는 한 비선조직이 화제다. 크렘린 클럽이 정식 명칭인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어떤 인물들이 가입해 있는지 등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있지만 이 클럽이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와병정국」에서 러시아를 주물러 온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대다수의 러시아인들은 옐친 대통령의 둘째딸 타치아나(애칭 타냐) 디야첸코를 크렘린 클럽의 「여주인」으로 믿고 있다. 물론 타냐는 현재 아무런 공식직함도 갖고 있지 않다. 겉으로는 두 아이를 정성껏 뒷바라지하는 보통 가정주부다. 적어도 지난해 6월 대선이전에는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우주전산학을 전공하고 우주과학연구소 「살류트」에서 연구원 생활을 거친 평범한 여성 과학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타냐가 결코 평범하지않은 크렘린 클럽의 여주인으로 지목된 것은 대선을 전후한 그의 역할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2월 아버지의 재선을 위해 정치판에 뛰어든 후 아나톨리 추바이스 제1부총리와 함께 프레지던트 호텔 9층에 자리잡은 대선기획단을 이끌었다. 크렘린 클럽의 모태도 바로 이 대선기획단.
타냐는 러시아 와병정국에서 아버지의 병실을 지키면서 존재가치에 한층 빛을 발했다. 그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대통령을 만날 수 없었다. 타냐를 중심으로 한 크렘린 클럽은 자연스럽게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3·18개각을 계기로 정국의 전면에 나섰다. 제1부총리로 입각한 추바이스의 크렘린 행정실장 자리를 이어받은 언론인 출신의 발렌텐 유마쉐프나 알렉산데르 쿠드린 재무차관 등이 크렘린 클럽에서 배출된 인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타냐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가 조만간 한보청문회에 나설 김현철씨를 연상케 한다는 점이다. 59년생으로 나이가 비슷하고 대통령의 둘째 자녀이며 아버지의 선거운동을 돕다 정계에 진출, 대선이후 급격히 영향력을 높여왔다는 게 그렇다. 두 사람은 또 대통령과의 혈육관계에서 권력을 찾고 이를 정치성 높은 사조직을 통해 발휘했다.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타냐의 국정 및 이권개입 의혹을 문제삼는 기관이나 언론이 아직은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 언론은 이상하게도 한국의 정치상황에 큰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과 재판, 노동법 기습통과와 이에 따른 가두시위, 한보사건, 김현철씨의 국정개입 의혹 등은 이곳 언론에서 크게 다루고있는 뉴스다. 러시아 정계에 치마바람을 일으킨 타냐가 이같은 언론보도를 통해 김현철씨 사건을 대하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그가 한국 대통령가족의 말년을 보며 3∼4년후 자신의 자화상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지가 특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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