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실존땐 엄청난 폭발력/체제분열·정치권 격랑 우려도『황구가 열쇠다』 황장엽 북한노동당비서의 망명이 국내정국에 미칠 파장을 묻는 질문에 대해 18일 여권의 한 관계자가 순간적으로 던진 말이다. 그는 『한보정국의 향배가 정태수 총회장의 입에 달렸다면 「황장엽 정국」은 황비서의 입에 달렸다』고 말했다. 황장엽 망명이 몰고올 국내정치적 파장의 강도를 지금으로선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다름아닌 황풍」의 가변적 요인과 불확실성 때문이다.
황장엽 망명사건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눈길은 예사롭지가 않다. 황비서가 국내에 들어와 털어놓을 말의 내용에 따라 정국 흐름이 뒤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황장엽 망명을 신중하게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황장엽 망명에 대한 언론의 경쟁적 보도가 뒤따른다면 정체불명의 「황장엽 정국」이 조성될 여지가 다분히 있는 것이다.
정치권은 바로 이 점을 경계하고 있다. 남북문제에 정통한 이홍구 신한국당 고문은 『제일 우려되는 것은 황장엽 사건에 대한 언론의 과열 보도태도』라면서 『자칫하면 국내정치의 초점이 분산되고 이로 인해 국론이 분열되는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고문은 특히 『황장엽사건은 단순한 탈북이나 귀순이 아닌 망명사건』이라면서 『우리 체제와 연결시켜 황비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장엽 망명은 아울러 일상적인 정쟁의 잠복과 정치권의 일시적 냉각을 가져올 수도 있다. 가령 그동안 잠잠했던 대결적 이념논쟁이 정치·사회적 화두로 등장할 경우 정치권은 격동할 게 틀림없다. 체제내 분열상이 노정될 위험성마저 있다. 이와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대목이 바로 「황장엽 리스트」다. 황장엽리스트는 실존여부 자체부터가 불분명한 것이긴 하다. 그러나 만에하나 황비서의 폭로적 증언과 진술을 통해 우리 체제내부의 리스트관련 인물들이 거명될 경우 그 폭발성과 파괴력은 예측하기조차 힘들다.
정치권 안팎의 보수파 인사들은 벌써부터 황비서를 일종의 전범으로 취급하면서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이념논쟁의 서곡이 이미 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황장엽정국이 시급히 조성될 것으로 예단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황비서는 서울도착 직후 상당기간 관계당국의 조사를 받아야 할 것인 만큼 단시일내에 황풍이 불어닥칠 것으로 보긴 어렵다. 여권의 한 북한전문가는 이와관련, 『황의 진정한 망명동기나 목적이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좌에서 우까지 모든 스펙트럼을 냉정하게 봐야지 어느 한쪽으로 예단해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황장엽 망명의 충격이 아무리 크더라도 한보정국을 완전히 압도하거나 정치일정에 차질을 빚을 정도로 정국분위기가 반전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황비서의 입에서 나온 얘기들이 충분한 검증을 거쳐 공개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비로소 「황풍의 본체」가 드러날 가능성은 있다.<정진석 기자>정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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