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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설 부실관행의 ‘총집합’/경부고속철도 ‘총체적 부실’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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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설 부실관행의 ‘총집합’/경부고속철도 ‘총체적 부실’ 판정

입력
1997.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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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내 착공” 6공 공약 매달려/노선설계도 없이 공사 시작/‘뒷골목 포장하듯’ 적당주의에 감리조차도 주먹구구식경부고속철도 시험선구간중 20%이상이 재시공 및 보수대상이라는 점검결과는 치적주의에 급급한 역대정권과 눈가림공사에 익숙한 우리 건설업체들의 부실관행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한국건설의 자화상」이다.

정부는 「임기내에 경부고속철도를 착공하겠다」는 노태우 대통령의 선거공약을 실천하는데만 매달려 노선설계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92년 6월 천안∼대전간 시험선구간을 착공했다.

시간에 쫓겨 사업을 벌이다 보니 노선설계는 물론 공사방법까지 수시로 바뀌어 이미 시공한 현장을 다시 뜯어내고 재시공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언론들이 이러한 부실시공 실태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정부는 마지못해 외국전문기관에 맡겨 안전진단을 실시했고 그 결과는 예상대로 「총체적 부실」로 나타났다.

1,012곳의 안전진단 대상 구조물부위중 완전한 것으로 확인된 곳은 30%도 되지않았다는 조사결과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시공업체가 제대로 공사를 벌이는지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감리자들이 점검해야 하나 궁현터널 부실문제가 발생한 93년 6월까지 1년동안은 토목공사에 전문적인 감리지식이 없는 한국고속철도공단이 직접 감리를 했다는 사실은 정부가 경부고속철도를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추진했는지 반증해주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현장 대부분이 고속철도 공사 초기에 공단이 직접 감리했던 구간들이다.

시공업체들의 날림공사는 말할 것도 없다. 시속 300㎞로 달리는 고속철도는 안전사고가 날 경우 엄청난 재앙이 불보듯 뻔한데도 업체들은 「뒷골목 포장사업 벌이듯」 적당히 공사를 벌였다.

이번 안전점검 과정에서 일부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서는 인부들이 먹다남은 음식쓰레기가 발견됐는가 하면 일부 교각은 충분히 깊이 파묻지 않아 침하될 우려가 있어 정밀재조사가 필요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미국 WJE사가 안전점검을 벌인 대상은 서울∼대전 구간 중 교량 37개(32.5㎞) 터널 15개(14.7㎞) 토공 및 암거 90개(13.8㎞) 등 1,012개소였다.

이중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부분이 라멘(Rahmen)교 교좌장치부분이다. WJE가 점검한 37개 교량 가운데 5개가 라멘교로 시공된 것이며 이 5개 교량 중 39개 부위가 재시공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일반적으로 교량을 세울 때는 기둥을 세운 다음 기둥상부에 교좌장치를 설치하고 그 위에 상판을 얹게 된다. 교좌장치는 철도레일과 같은 철심으로 시공하는 레일받침 방식과 고무판을 대는 고무받침 방식이 있다.

레일형식은 고도의 시공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부실공사 가능성이 높은 반면 고무형식은 레일형식보다 시공난이도는 낮으면서도 성능은 우수한 진보된 방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고속철도공단은 두 형식의 시공방식에 대한 충분한 검토도 거치지 않은 채 레일형식을 택해 설계했으며 결국 부실공사를 초래한 셈이다.

PC(Precast Concrete)박스교에서는 상판의 안전성이 주로 문제가 됐다. 높이 10m가 넘는 교량 등 높은 교량은 일렬로 기둥을 세운 다음 그 위에 미리 제작된 상판을 얹는 방식의 PC박스교가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PC박스교의 기둥과 맞닿는 부분은 힘을 많이 받기 때문에 정밀하게 시공해야 한다.

이번 WJE의 점검 결과 2개 교량의 상판 끝부분 4개소는 힘을 많이 받는 지지대면서도 주위에 균열이 가 있고, 철근이 노출돼있는가 하면 콘크리트 내부에 기포 등이 허용치를 초과할 만큼 많아 재시공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WJE는 또 재시공판정을 내린 39개 부위 이외에 16곳이 교량 상판의 PC강선 배치가 부적절하게 이뤄져있는 등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 정밀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터널내 숏크리트 부위 등 132개소는 보수필요 여부 또는 보수방법 결정을 위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구조물 안전진단분야 세계적 전문기업

▷미 WJE사◁

경부고속철도 시험선구간의 안전진단을 맡은 WJE(Wiss, Janney, Elstner Associates)사는 미국 시카고에 본사를 둔 전문감리업체다.

토목 건축 등 각 분야 200여명의 기술자를 보유하고 있는 이 회사는 구조물 안전진단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전문기업이다.

24억원의 용역비로 이번 안전진단을 맡은 WJE는 30여명의 전문기술진을 파견하고 충격반향시험 초음파시험 표면파주파수시험(SASW) 평행관입시험(PDST) 등 첨단조사방법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부실책임도 “네탓이오”/600억 재시공비용 시공·설계·감리·공단측 떠넘기기

「경부고속철도 부실공사는 누구 책임인가」

국민들에게 엄청난 허탈감을 안겨준 이번 경부고속철도 부실공사 파문의 1차적 책임은 물론 해당 시공업체들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WJE가 지적한 부실공사 부분 가운데는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의 정책적인 결함과 설계상 오류도 내포돼 있는 것으로 드러나 책임소재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따라 총 300억∼600억원으로 추산되는 재시공 및 보수비용의 분담을 둘러싸고 공단과 시공업체, 설계업체 감리업체간 마찰도 예상되고 있다.

물론 고속철도공단이 WJE로부터 진단결과 보고서를 받은 다음 2개월에 걸쳐 국내 18명의 토목·건축전문가를 통해 적정성 여부를 검토한 뒤 원인규명 작업을 거치지 않고 언론에 공개했기 때문에 각 문제부위의 정확한 원인은 추후 정밀조사를 통해 밝혀지게 된다.

그러나 총 35개 부위에 대한 재시공판정이 내려진 라멘교의 교좌장치는 벌써부터 논란이 되고 있다.

경부고속철도의 4―1공구 설계를 맡았던 동명기술공단이 충분한 시공기술 검토없이 「레일형식」으로 설계했으며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은 이를 여과없이 받아들였다.

WJE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4―1공구에 채택된 레일형식은 시공상태도 문제가 있지만 단순히 보수차원에서 그칠게 아니라 차제에 고무형식으로 바꾸는게 장기적인 안전을 위해 도움이 될 것』으로 권고했으며 공단도 이를 받아들여 문제 부위를 모두 고무형식으로 교체해 재시공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WJE는 불량시공된 부분을 단순히 보수하는 차원을 넘어 「장기적인 대책」차원에서 교좌장치 전체에 대한 재시공을 권고한 것이다. 애당초 설계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인 셈이다.

이에따라 시공업체측은 『설계자체에 문제가 있는 공사를 자체비용을 들여 무조건 재시공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책임소재를 명백히 가린 후 재시공 비용을 분담하자는 입장이다.

업체들은 또 부실시공 판정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단일 업체로는 가장 많은 35건의 재시공판정을 받은 일성종합건설(4―1공구)은 『35개 교각 모두에 대해 이미 적법한 절차를 거쳐 중간검사와 준공검사를 받아놓았으며 품질에도 아무런 하자가 없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감리사인 동명기술공단도 『WJE가 실적을 내놓기에 급급해 문제가 되지도 않는 사항까지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과장했다』고 주장했다.

◎고속철도 건설 책임자가/부실공사 자인 신선한 충격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이사장 김한종)이 고속철도 「부실현장」을 스스로 언론에 공개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김이사장은 「치부」를 드러내기까지 며칠밤을 뜬눈으로 지새며 인간적인 고뇌를 했다.

건설부 공무원으로서 수십년간 쌓아온 자신의 입지를 벼랑끝에 세워야 하는 번민속에서도 『부실건설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일소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끝내 저버릴 수 없어 고위층에 보고하고 용기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이사장의 고뇌는 지난해 3월 이사장에 취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미 공단내외에서 천안∼대전간 시험선 구간 공사를 전면 재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었다. 취임하자마자 서너달 밤을 새워 둘러본 현장은 건설통인 그에게 그야말로 칼을 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한심했다는 것이다. 들쭉날쭉한 철근간격, 규정보다 얇은 콘크리트두께는 물론 토목공사의 기초도 엉망이었다. 10개의 현장에서 7군데가 불합격 모래를 사용하는 등 제대로 된 곳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김이사장은 현장시찰후 곧이어 공정 재조정을 발표하고 전면적인 안전진단을 실시하기로 결심했다. 국내업체로는 안심이 안돼 안전진단을 미국 WJE사에 맡겼다.

안전진단을 결심하기까지 과정도 만만찮았다. 재시공에 따른 공사비 증가를 우려한 시공업체는 공공연히 압력을 가해왔다. 『잘되고 있는 사업을 왜 문제삼느냐』는 정부내의 보신주의자와도 맞붙어야 했고 『누구도 문제삼지 않는 공사를 무엇때문에 트집을 잡느냐』는 공단내부의 불만도 거셌다. 밤낮으로 걸려오는 협박전화에 가족까지도 불안에 떨어야 했다. 심지어 『당신 배는 쇠로 됐냐』는 협박전화를 받고는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온갖 협박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7월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하고부터다. 『공사기간에 연연하지 말고 안전에 한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 『후손과 역사에 결코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는 당부는 그의 결단에 큰 힘이 되었다.<김동국 기자>

▷용어해설◁

◆라멘교

라멘(Rahmen)교는 독립문처럼 두개의 기둥이 상판을 떠받치는 형태의 교량을 말한다. 기둥위에 기둥을 잇는 상부구조물이 설치되고 상부구조물 위에 놓여지는 교좌장치가 상판을 직접 받치게 된다. 지반이 약하거나 높이가 낮은 교량에 주로 사용되고 튼튼한 게 장점이다.

◆PC박스교

지반이 튼튼하면서도 기둥의 길이가 15∼20m에 달하는 등 높은 교량을 설치하는데 주로 사용되는 공법. PC(Precast Concrete)박스란 지상에서 미리 만든 상판구조물을 지칭한다. 단일 기둥을 일렬로 설치하고 미리 제작된 상판구조물을 얹어 공중에서 조립하게 된다.

◆교좌장치

인체의 관절처럼 교량에서 기둥과 상판을 연결하는 장치다. 여름철에 날씨가 뜨거워지거나, 전철이나 차량들이 교량 위를 달리게되면 교량상판이 양쪽으로 늘어나게 된다. 반대로 겨울철에는 상판이 수축작용을 한다. 교좌장치로는 60년대의 경우 레일형식이 주로 사용됐으나 양쪽의 평형을 정확하게 맞추기 어려워 70년대 이후에는 고무형식이 널리 이용되고 있다.

◆암거

고속철도 공사를 해나가다보면 농로, 수로 등이 교차하게 된다. 이들 소규모 농로 수로 등을 유지하면서 고속철도를 놓기 위해서는 대규모 교량보다는 소형구조물만 설치해도 충분할 때가 많다. 이같은 목적으로 사용되는 구조물이 암거다. 암거는 주로 지하에 묻히기 때문에 설계대로 정확하게 시공하지 않으면 관 등이 조기부식되므로 세심한 시공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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