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있게,그러나 튀지않게/파격·전통조화 디자인에 ‘원색은 NO’/캐릭터정장·미시옷차림 탄생30대가 패션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입는 문화에 관한 한 주변인처럼 여겨지던 30대가 스스로를 「패션의 신주체세력」임을 자임하고 나섰다. 패션1번지인 압구정동과 명동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층은 이제 20대가 아니라 30대 초반의 직장인들이다.
명동 패션숍 KL 주인 강정길(35)씨는 『요즘은 완전히 OL(직장여성)들로 물이 바뀌었다』며 『울긋불긋 원색이던 명동 멋쟁이의 옷 색깔도 차분한 2차색 계통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압구정동 액세서리 노점상 양정원(28·여)씨도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오렌지들이 들끓던 로데오거리에 30대 남녀 직장인들이 모여들고 있다』며 『액세서리 주 고객도 30대로 바뀌어 이들의 기호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전한다.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숙녀복 구매담당과장 박경호(34)씨에 따르면 패션 아웃사이더였던 30대가 중심부로 급격히 진입하는 것은 이들이 이전의 30대들과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20대에 88년 서울올림픽과 컬러TV를 경험, 색깔과 디자인에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다. 또 대학시절 개방적인 분위기와 접촉하면서 자연스레 개성을 중시하게 됐다.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진출로 30대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다소 사치스러운 옷에 투자할 만한 여유도 있다. 결국 오늘의 30대는 패션에 둔감하고 수동적인 기성세대와는 달리 패션에 민감하고 공세적인 세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들은 밀리터리 룩(군복패션)이나 그런지 룩(거지 패션) 등 20대가 추구하는 옷입기와는 다른 스타일을 추구한다. 「개성있게, 그러나 튀지않게」가 이들의 모토다. 이들의 패션은 파격과 전통을 조화시킨 디자인이 특징이다. 노출하되 너무 심하지 않게, 선과 면을 변화시키되 기존의 옷형태를 완전히 파괴하지 않는다. 색깔에서는 검정색 감색 회색같은 전통색에서 벗어나되 원색은 피하고 있다.
30대의 이같은 특성을 현실 의류시장과 연결시킨 것이 여성복에서 「미시 패션」, 남성복에서 「캐릭터 정장」이다.
비록 주부지만 겉으로는 미스같아 보이도록 옷을 입는다는 의미의 「미시 패션」은 93년 「타임」이라는 국내브랜드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 이듬해 그레이스백화점이 미시백화점을 표방하면서 이같은 종류의 옷들을 매장에 적극 유치, 「미시 패션」을 대중화하는데 기여했다. 95년에는 「미샤」 「애브솔루트」, 지난해에는 「지센」 「앗슘」, 올해는 「지 보티첼리」 등 미시브랜드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캐릭터 정장」은 남성정장이지만 기존의 형태를 다채롭게 변형, 30대들의 개성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켜 준 옷이다. 「캐릭터 정장」 브랜드로는 88년 등장한 「카루소」가 최초이다. 이 브랜드는 처음에는 빛을 보지 못했으나 93년 롯데 현대 신세계 갤러리아 등 유명 백화점에 매장을 개설하면서 자리를 잡게된다. 「카루소」의 성공은 94, 95년 「프랑소와즈 옴므」 「이신우 옴므」 「테무 옴므」 등이 잇달아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갤러리아백화점의 경우 숙녀복 매출 가운데 「미시 패션」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율은 94년 10%, 95년 20%, 지난해 30%로 매년 10% 포인트씩 증가했다. 남성복 중 「캐릭터 정장」의 매출비율도 93년 5%안팎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10%로 늘었다.
30대 패션브랜드의 등장과 성공은 주변 분야로 확대돼 가고 있다. 미시전용 가죽 액세서리 브랜드인 「니콜」과 젊은 주부를 주 고객으로 하는 목욕용품 브랜드 「넥타」의 인기는 「미시 패션」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었다. 또 패션속옷 파티웨어 패션안경의 등장도 30대 패션이 낳은 것이다.
당초 대부분의 패션 디자이너들은 「미시 패션은 거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이들은 「패션의 바다」로 막 뛰어든 30대를 주목하고 있다. 30대 패션의 미래가 패션산업 전체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이은호 기자>이은호>
◎30대 패션의 미래/구매력 갈수록 커져 고도성장 계속 이어갈듯/일부선 “멋내기 단명” 시각도
「미시패션」과 「캐릭터 정장」으로 대표되는 30대 패션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코디네이터 서영희(37·여)씨는 『20대의 젊음에 향수를 느끼면서, 40, 50대 기성세대를 이해하는 중간자적 입장의 30대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30대 패션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패션컨설턴트 김동수(40·여)씨는 『30대 여성을 중심으로 구매력이 급성장하고 있어 앞으로 30대가 20대만큼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패션 수요층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화적, 경제적 특성에 기초해 30대 패션의 미래에 대해 이같은 낙관론을 펴는 전문가들은 30대 패션이 앞으로 세분화 전략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어갈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30대 패션이라 하더라도 지금처럼 모두 엇비슷한 형태가 아니라 2, 3세 단위로 스타일이 다양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30대초를 위해서는 좀 더 파격적이고 젊은 형태의 옷이, 30대말을 위해서는 「마담 브랜드」나 「전통 신사복」에 가까운 옷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지금의 정장 중심의 아이템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성대한 연회를 위한 「파티웨어」에 레포츠용인 「토요 브랜드」, 집안에서 입을 수 있는 「나이트웨어」 등 비정장 아이템이 속속 출현한다는 것이다.
반면 30대 패션이 단명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30대 패션의 개념은 당초 「슈퍼우먼 이데올로기」(주부로서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외모까지 처녀 뺨치게 아름다운 여성이라야 한다는 관점)에서 비롯됐는데, 「슈퍼 우먼」은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김정곤 기자>김정곤>
◎어느 30대 부부의 패션캘린더/요일따라 분위기가 다르다/월요일은 경건하게 감색수트/주말엔 콤비·잉크블루 셔츠
불혹을 눈 앞에 둔 차광철(39·회사원)씨는 7살 연하의 「미시아내」 김하늬(32·방송작가)씨 덕분에 패션연령이 실제 나이보다 7, 8년은 젊다.
월요일은 「시작은 경건하게」라는 아내의 모토대로 감색수트에 미색 셔츠와 체크무늬 넥타이로 중후함을 강조한다. 김씨도 자유분방하게 옷을 입는 스타일이지만 월요일은 남편과 보조를 맞춘다. 보세점에서 마련한 회색계통의 정장차림으로 출근한다.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브라우스는 레이스가 있는 것을 골라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바람부는 날이면 버버리코트를 입는다. 이런 분위기는 화요일까지 지속된다. 그러나 블라우스나 와이셔츠를 갈아입는 것은 잊지 않는다.
수요일부터는 시작의 무거움을 떨치고 변화를 모색한다. 남편 차씨는 연한 쑥색정장에 흰색, 분홍빛 와이셔츠로 분위기를 바꾸고 아내 김씨는 검은색 바지와 검은색 남방에 청자켓을 걸친다. 이 때는 은빛 귀고리로 단조로움을 피한다.
토요일은 한주일의 단조로움을 벗어나 한껏 자유로워진다. 차씨는 베이지색바탕에 초콜렛색 체크무늬가 있는 조금은 헐렁한 콤비 상의와 검은색 바지에 드라마 「애인」으로 유행을 탄 잉크블루색 와이셔츠를 받친다. 김씨도 이날은 20대로 돌아간다. 미색 바탕에 꽃무늬가 있는 자락 긴 치마에 청자켓을 입거나 그 위에 버버리 코트를 걸치고 나선다.
김씨는 『다소간의 패션변화는 처녀시절의 생기를 되찾을 수 있는 좋은 방편』이라고 패션철학을 개진했다.<김정곤 기자>김정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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