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든 거리에서든 할머니들에게서 물건을 사보면 그들이 돈을 얼마나 소중하게 다루는지 알게 된다. 다 합쳐 몇만원어치나 될까. 볼품없고 빈약한 물건을 펼쳐 놓고 할머니 상인들은 앉아 있다. 만원짜리라도 받으면 몇 번이고 거스름돈을 세어서 내준다. 전대에 돈을 넣을 때도 조심스럽고 정성스럽다. 그들의 소나무껍질같이 거친 손, 가난과 고생에 찌들어 갈라진 논바닥같은 얼굴을 보노라면 과소비, 낭비가 부끄럽고 죄스럽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안심을 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 덕분에 우리 사회는 그나마 지탱되는 것이 아니겠는가.얼마 전 윤분애라는 부산의 84세 할머니가 평생 모은 10억원을 동사무소와 파출소 건축비용으로 희사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편지를 보내 『윤여사는 매년 어려운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어린이와 노인을 위해 선행을 베푸는 등 참으로 장한 일을 해왔다』며 『이처럼 따뜻한 사랑으로 우리 사회에 밝은 빛이 된 윤여사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치하했다. 3월에는 40년동안 행상과 삯바느질을 해온 전주의 최은순(80) 할머니가 전북대에 1억원을 기부했다. 그의 남편은 결혼 1년만에 허리를 다쳐 앓다가 20년만에 숨졌다. 남편을 한 번도 병원에 입원시키지 못할 만큼 최할머니는 가난했고 외동딸이었던 그의 삶은 도와주는 사람없이 고단했다. 지난해 3월 허리가 아파 입원했을 때 이대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최할머니는 돈을 대학에 맡겼다. 이처럼 남을 도움으로써 자신의 불행과 고난을 극복하고 못배운 한을 푸는 할머니들은 의외로 많다.
「정태수리스트」가 3개월 가까이 이 사회를 괴롭히고 있다. 정당한 노력과 노동으로 돈을 버는 것이 오히려 우습다. 눈 먼 돈에 혈안이 된 사람들은 너무도 많다. 솔광과 팔광을 먹으면 15점을 주는 한보고스톱도 유행하고 있다. 솔은 1, 즉 「한」이며 팔광은 보름달, 「보」라는 뜻에서라고 한다. 이런 세상에서 눈물과 피와 땀이 밴 할머니들의 돈은 우리 사회를 부끄럽게 한다. 감사편지를 보낸 대통령도 하마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 할머니들은 입지 않고 먹지 않고 돈을 모았지만 써야 할 때 아낌없이 쌈지를 턴 사람들이다. 그들로부터 돈 아끼는 법,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부끄럽고 망신스러운 「정태수 리스트」 대신 자랑스러운 「할머니 리스트」를 만들어 기억하자.<논설위원실에서>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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