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함과 따뜻함 느껴지는 투명유리와 아크릴의 조화은사시나무 잎사귀 위에 앉아있는 빗방울, 연꽃 잎 위에 굴러 다니는 이슬, 개구쟁이가 햇빛 맑은 운동장 위로 흩뜨려 놓던 색구슬들, 하품한 아가볼 위에 문득 흘러내린 눈물 한 방울, 그 위에 투영되는 해맑은 햇살―어린 시절에는 늘 이런 것들에 넋을 잃었다. 마알간 유리는 이런 것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재이다.
프랑스 아크릴라사에서 90년에 만든 아크릴과 투명유리의 티테이블은 바로 이 어린시절의 해맑음에 대한 동경을 해갈시켜 주는 명품 가구이다.
높이 35㎝의 이 탁자는 아크릴 판과 다리위에 두께 8㎜의 강화유리를 얹은 비교적 단순한 형태. 하지만 사각탁자의 모서리 부분을 달래듯 깎아 8각형으로 만들고 그 아래를 받치고 있는 다리를 아크릴판이 감싸안고 있어 은근한 아름다움을 풍긴다. 그 아크릴판의 위와 양 옆 모서리도 45도 각도로 깎아 자칫 날카로워 보일 수 있는 차가움을 극복했다. 이때문에 기능적으로도 안전하고 디자인도 평범에서 벗어났다. 강화유리가 8각 아크릴 테두리 안에 살며시 앉혀있는 모습은 겉으로는 냉정하게 보이는 프랑스 귀부인에게서 다정다감한 마음씨를 우연히 발견할 때 같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 테이블의 백미는 윗 상판과 21㎝ 밑으로 떨어진 곳에 다시 하나 질러준 투명유리 받침이다. 아랫 선반에 재떨이 라이터 사탕그릇 등을 넣어두는데 쓸모도 있고 사물이 공중에 떠있는듯한 환상을 즐길 수 있다. 집에서 사무실로, 5층에서 6층으로 5년 이상 끌고 다녔어도 흠집하나 없이 견고한 것도 장점이다.
투명하고 밋밋하며 차고 조심스러워서 실용품을 만들기에는 어려운 소재로만 느껴지는 아크릴과 유리로 이렇듯 섬세하고 따뜻함을 감지할 수 있게 디자인한 사람에게 경의를 보낸다.<이영란 예전디자인그룹 대표>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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