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정신은 3·1정신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헌법정신이다. 헌법 전문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의 계승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 땅에 없어져야 할 「불의」는 계속되어 왔고 계승되어야 할 「4·19민주이념」은 희미하게 이름뿐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4·19혁명 이후 1년만에 5·16쿠데타를 맞아 30여년간 군사정권이 계속되었고 개발 독재의 그늘에서 민주주의는 후퇴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6·3사태, 유신반대,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을 통하여 4·19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4년전 문민정권이 들어서자 우리는 민주화의 완결인양 환호하였다. 그러나 현 정권은 불행하게도 집권 초기부터 문민독재라는 비난에 시달리다가 결국 한보비리와 김현철문제로 좌초직전의 위기에 놓여 있다.
서른 일곱번째 4·19를 맞는 지금의 상황은 4·19전야, 혁명 전야같은 느낌이다. 북한은 식량위기 등으로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상태에 있고 우리 역시 경제난과 과거비리 수사로 발목을 잡혀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37년전 4·19당시의 상황은 오늘과 형편만 다를뿐 닮은 점이 의외로 많다. 첫째, 경제의 어려움이다. 요즘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민생이 도탄에 빠져 있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가 절로 나왔다. 둘째, 부정부패가 극심하였다. 정경유착 아래 빈부의 격차가 심했다. 특히 농촌은 피폐하였다. 셋째, 정권에 대한 불신이다. 민심은 자유당 정권에 등을 돌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요즘의 상황이 4·19전야 같다고 하여 제2의 4·19혁명을 일으켜 현정권을 어떻게 하자는건 아니다. 이제 이 땅에서 또다시 폭력적 혁명을 바라는 국민은 없다. 현 대통령은 우리의 손으로 뽑은 사람이고 집권 초기에는 국민 90%이상의 지지를 받았었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방법을 찾아 잘만 하면 집권 초기와 같은 지지를 다시 끌어 내지 못할 리 없다. 그러면 오늘의 난국을 타개할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운 4·19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걸맞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지혜를 찾아야 할 때이다. 「4·19민주이념」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이 민주적 절차의 정신이다. 민주적 절차는 한마디로 「지켜야 할 원칙은 지키고, 거쳐야 할 절차는 거치는 것」이다.
문민정부 초기에 우리는 지켜야 할 원칙을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잘 지켜지지 않았다. 지킬 수 없는 원칙을 만들었거나 지키지 않아도 괜찮은 성역이 존재하였으며 원칙보다 예외를 많이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 원칙이 아니다. 앞으로는 꼭 지킬 수 있고 지켜야 하는 원칙을 만들고 이를 온 국민이 받들도록 하여야 한다. 작금 논의되고 있는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에 관한 개정 원칙이 바로 중요한 예가 될 것이다.
여기에 한가지 덧붙일 것은 아무리 좋은 원칙을 정하는 경우에도 거쳐야 할 절차는 더디더라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현 정권은 이 점을 너무 간과하였다. 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선거관계법 등은 물론 최근의 노동법파동도 그 한 예이다. 또한 공조직에 의한 제도적 절차와 공론화 방법이 있음에도 성행한 사적 조직과 밀실 논의가 바로 사태를 오늘의 이 지경까지 몰고 온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난국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가 취임 초기에 밝힌대로 이 정권의 정신적 바탕이 4·19정신에 있음을 다시금 가슴에 새기는 일이다.
이러한 새로운 4·19정신으로 거듭날때 이 정권도 임기를 채울 수 있을 것이고 3년 남은 2000년대를 희망찬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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