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엔 대통령중임제·내각제 거론김수한 국회의장은 7대국회때 원내에 진출한 이래 입법부 수장까지 오른 신한국당 민주계의 원로급 6선의원이다. 그는 한일협정체결 당시 「대일굴욕외교반대 범국민투쟁위」 대변인을 거쳐 지난 66년 해위 윤보선 선생이 총재로 있던 신한당 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67년 해위 선생이 민중당과 신한당을 통합, 신민당을 창당한 뒤에도 대변인을 맡았다가 그해 7대국회에 전국구로 원내에 진출했다. 그후 그는 4차례나 대변인을 역임, 무려 7년8개월동안 최장수 대변인 기록을 세웠다.
김의원은 70년대 중반 유진산계보로 들어가 당시 원내총무인 김영삼 대통령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후 그는 YS―DJ의 치열한 경쟁에서 상도동계보를 택했고, 90년 3당합당때도 YS의 뒤를 따랐다. 그는 그런 인연으로 전국구의원이면서도 15대 국회 전반기의 국회의장으로 발탁됐다.
김의원은 78년 10대 국회때 전국최다득표를 기록하는 등 70년대 후반 야당가에서 화려하게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에게 좌절과 우여곡절도 있었다. 한때 소석 이철승씨에게 기울어 「처신이 애매하다」는 평이 따라다니기도 했고, 13·14대총선때 내리 국민회의 이해찬 의원에게 고배를 마시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김의원은 야당시절 「그가 있는 곳에 당권이 있다」는 얘기가 있었듯이 정치적 촉수가 남다르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가 지난해 대통령 4년중임제를 주창한데 이어 최근 내각제를 거론한 것도 이와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이영성 기자>이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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