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인들이 한보와 정태수 총회장으로부터 받은 검은 돈의 내역이 밝혀지면서 국민의 가슴은 연일 무너져 내리고 있다. 검찰의 잇단 소환조사로 정치판은 대공황이 빚어지고 날로 황폐화되고 있는 것이다.어처구니 없는 것은 돈받은 의원들의 추악한 행태다. 리스트가 알려진 뒤는 물론 검찰에 도착해서도 「받은 적 없다」 「만난 일도 없다」 「음모다」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잡아뗐다가는 조사받은 후에는 「검찰에서 밝힐 것이다」 「참모가 받은 것 같다」고 두번 세번 속이는 뻔뻔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제까지 국민을 우롱할 것인가.
이 판국에 의원들의 책임과 윤리를 들먹이는 것은 사치인지도 모른다. 의원들은 임기벽두에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며 양심에 따라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할 것」을 선서했으며 국회의원 윤리강령은 「직무와 관련하여 부당한 이득도모와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돈받은 의원들은 스스로 다짐한 의무규정을 짓밟은 것이다.
검찰의 소환대상자중에 김수한 국회의장이 포함된 것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김의장측이 「개인적으로는 얼마든지 응할 수 있으나 입법부의 수장인만큼 대통령이 국회에 요청하는 등의 절차가 있어야 한다」 「각별한 예우를 해야 한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 검찰청에 공개리에 출두할 수 없다는 요청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의장의 권위와 체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금품수수 사실 여부다. 만일 사실무근이라면 떳떳하게 자진 출두하고 어떠한 명목이든 받았다면 의장직을 사퇴한 후 조사에 응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우리는 수년전 이태리의 마니폴리데(깨끗한 손)란 이름아래 정계에 대한 대대적인 부패척결때 현·전직 총리 5명을 비롯, 150여명의 상·하의원을 포함한 400여명이 조사받은 적이 있음을 기억하고 있다. 일본 리크루트사건때도 의원 40∼50여명이 소환되어 처벌받았던 일이 있지 않은가.
정치권은 한보의 검은 돈 파문으로 헌정사상 최대위기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장차 정치풍토쇄신의 큰 계기로 삼을 수 있느냐 여부는 관련의원들의 진실고백과 반성에 달려 있다. 나만 살겠다며 속임수로 국민을 우롱하는 한 백년하청일 것이다. 국민은 잊지 않는다. 반드시 다음 선거에서 그같은 정치인들에 대해 엄중한 심판을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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