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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공원에서(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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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공원에서(장명수 칼럼)

입력
1997.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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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 교류기금에서 1년동안 장학금을 주겠다는 연락이 왔을 때, 내가 엉뚱하게 꿈꾼 것은 깊은 숲에서의 깊은 휴식이었다. 일본의 그 무엇을 공부하기보다 먼저 숲으로 가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삼십 몇년동안 안식년도 없이 일해 온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나는 나무들 속에서 치유받고 싶었다.도쿄(동경)에 살고 있는 친구가 이심전심으로 구해 놓은 나의 집은 바로 우에노(상야)공원 앞에 있었다. 작년 10월 내가 처음 공원에 갔을 때 아름드리 나무들은 잎을 떨군채 늠름한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비가 자주 내리는 일본의 가을, 수북이 쌓인 낙엽은 늘 젖어 있고, 공원에는 젖은 나무 냄새가 가득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카드를 보내며 『하루 24시간 자기자신과 단 둘이 있는 이 달콤함!』이라고 썼다. 쓸쓸함까지 달콤했다. 만일 공원이 없었다면 혼자서 그처럼 충만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을까. 물론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본에 왔다기보다 우에노 공원에 왔다는 말이 더 적합할만큼 나는 많은 시간을 공원에서 보냈다. 가을 겨울 봄이 흘러갔다. 벚꽃이 지고있는 공원에는 벌써 초여름 신록이 눈부시다. 나는 이 공원의 가족이 되었다고 느낀다. 하루종일 공원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지, 어떤 사람들이 오가는지, 어떤 꽃들이 피고 있는지, 나는 훤하게 알고 있다. 공원안에 텐트를 치고 사는 집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경계심대신 관심을 갖게 됐다. 빗소리, 바람소리에 잠이 깨는 새벽이면 그들의 텐트가 무사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공원은 새벽 6시쯤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는 종전직후부터 매일아침 6시30분 국민체조 프로그램을 계속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집에서 NHK 프로에 맞춰 함께 체조하고 있다. 체조가 끝나면 공원 곳곳에 모여 창과 민요를 부르거나, 샤미센 등 악기를 연주하거나,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동호인 그룹들을 볼 수 있다. 낮시간에는 공원안에 있는 동물원 박물관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이 붐비고, 음악회가 열리는 저녁에는 불을 밝힌 음악당 주변에 음악팬들이 모여든다. 벚꽃이 만발한 4월초에는 꽃구경을 즐기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우에노 공원은 신주쿠(신숙)역 구내와 함께 집없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기로 유명한 곳인데, 그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엄격한 불문율을 지키고 있다. 그들은 풍요를 구가하는 일본의 버려진 미아들이지만, 일본인의 질서의식을 버리지는 않고 있다. 보호시설에 가는 대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그들은 텐트안에서 개나 고양이를 기르고, 꽃도 키우고, 독특한 문패와 깃발을 달기도 한다. 그들은 주변을 청소하고, 치안을 유지하여 자신들에 대한 반발여론을 예방한다. 단속반이 오는 날이면 일제히 리어카에 짐을 싣고 건너편 골목으로 잠시 피하는데, 단속반도 물론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우에노 공원에 자주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년층이다. 이 공원이 없다면 그들의 노년은 얼마나 삭막할까. 예쁜 운동복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체조하러 오는 할머니 할아버지, 연못에서 휘파람으로 자기만이 아는 새를 불러 먹이를 주는 멋진 신사, 새벽마다 만나 담소하는 동호인들, 개와 함께 산보하는 혼자 사는 노인들…. 공원이 없다면 그들은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 갈까.

지난주 서울에 갔을때 여의도 광장을 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아스팔트를 뜯어내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서울시민들이 새로운 공원을 갖게 되는 것은 큰 축복이지만, 선뜻 찬성하기는 어려웠다. 광장은 광장대로, 공원은 공원대로 필요한 것인데, 이미 광장으로 자리잡은 곳을 공원으로 바꾼다면, 광장이 필요할 때는 어디로 가야 할까. 공원을 만든다고 광장을 파괴하는 발상이야말로 공원다운 공원을 갖지 못한채 살아온 우리의 삭막한 사고방식을 반영하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새 공원을 만든다 한들 그 공원이 잘 지켜질까.

우에노 공원에 압축돼 있는 일본, 여의도 공원 계획에 담겨있는 우리의 속성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까. 내가 우에노 공원을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지나친 걱정을 하고 있다면 다행이겠다.<편집위원·도쿄(동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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