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포드·크라이슬러…/89년 디트로이트 인근 가 소도시에 첫발/작년 매출 1,700만불 99년 4,100만불 목표「타운 카(TOWN CAR), 크라운 빅토리아(CROWN VICTORIA), 그랜드 마키(GRAND MARQUIS)…」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미국의 고급 승용차들이다.
이들 내로라하는 고급차의 내부부품을 들여다 보면 「HCI」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이 HCI가 다름 아닌 우리기업의 북미 현지계열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라그룹이 자동차의 본거지인 북미시장을 노려 캐나다에 설립한 HCI(한라공조캐나다)가 이 지역의 강력한 라이벌들을 따돌리고 차량용 에어컨과 관련부품분야에서 빼어난 기술력으로 북미시장을 석권, 현지인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고 있다.
한라그룹이 HCI를 설립한 것은 89년 6월.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위치한 4만인구의 소도시인 벨빌시에 닻을 내렸다.
HCI는 그러나 출발부터 숙명의 선택을 해야했다. 벨빌시 동북쪽 브르몽에 있던 현대자동차 캐나다공장을 타깃으로 삼아 그곳에 공장을 설립할 것인가, 아니면 내로라하는 자동차업체들이 몰려있는 미국의 디트로이트와 가까운 벨빌시에 공장을 세워야 할 것인가를 놓고 상당한 내부 진통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회사내부에서는 안정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절친한 관계인 현대자동차를 주요 납품처로 삼아 브로몽지역에 공장을 세워야한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그러나 당시 정몽원 한라공조 사장(현 한라그룹 회장)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는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디트로이트와는 차량으로 6시간거리에 불과한 벨빌을 선택했고, 이 전략은 적중했다.
현대자동차는 90년대들어 판매부진이 심화하면서 공장을 정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에 의존하는 영업전략을 세웠다고 가정하면 이미 현대와 함께 북미에서 「동반퇴진」할 수 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런 산고끝에 벨빌시에 기틀을 잡은 HCI는 「나는 나, 회사는 회사」라는 현지종업원들의 개인주의적인 직업의식을 개조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89년 10월 공장가동에 필요한 30여명의 근로자를 채용하기 위해 신문광고를 내자 400여명이 몰려드는 등 현지인들의 성원은 대단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우리회사」라는 소속의식은 전혀 없었다. 근무시간이 끝나면 작업도구까지 내팽긴채 퇴근하는가 하면, 작업량이 밀려도 시간외근무를 시키기도 어려웠다. 작업량의 증감에 따라 수시로 감원이 단행되는 현지의 기업풍토에서는 당연한 현상이기도 했다.
한국본사에서 파견된 5명의 직원들은 현지고용인들의 직업의식을 「한국식」으로 바꾸지 않고는 HCI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들을 국내로 데려와 연수를 시키는 등 「우리회사」라는 의식을 심기위해 노력했다. 근무나 보수제도도 뜯어고쳤다.
이같은 노력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했다. 설립후 3년여동안은 그들 특유의 개인주의와 잦은 퇴직으로 작업능률이 떨어지고, 현지시장공략에도 실패해 적자를 면치못했다.
그러나 HCI의 가족적인 경영방식이 현지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가면서 주말특근을 자청하는 직원들까지 등장하는 등 작업장이 활기를 띠고 생산성이 궤도에 올라 93년부터는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세계최대 자동차업체인 GM과 포드에 차량에어컨의 주요부품인 어큐뮬레이터와 히터를 공급하기 시작했고, 이듬해에는 포드사가 협력업체에게 수여하는 최고품질상인 「Q-1상」을 받기도 했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국가의 업체가 이 상을 받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HCI가 납품하는 부품은 이후 크게 늘어나 지난해말 현재 GM과 포드가 생산하는 차량의 10%이상이 HCI의 에어컨부품을 사용하고 있다. 미국 크라이슬러사와의 자동차부품 공급계약도 성사단계에 와 있다. 미국의 자동차 「빅3」가 HCI의 에어컨부품을 공급받아야만 자동차 생산의 전공정을 완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HCI의 지난해 매출액은 1,712만달러. 93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현재와 같은 성가가 계속된다면 99년 4,100만달러의 매출액달성계획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 현지인들의 전망이다.<김동영 기자>김동영>
◎‘휠체어의 불도옹’/한라그룹 정인영 명예회장 일선 은퇴후도 해외현장에
한라그룹의 해외경영은 정인영(78) 명예회장의 쉼없는 강행군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명예회장은 올해 1월 34년간 맡았던 한라그룹 경영권을 차남인 몽원(42) 회장에게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의 해외경영에 대한 집념은 예전과 전혀 다름없다. 그는 올들어서도 지난 9일까지 무려 59일간을 해외에서 보냈다.
1월에는 6일간 신문용지생산공장과 자동차부품공장 건설 등을 협의하기 위해 중국을 다녀왔고, 지난달과 이달초에는 태국 홍콩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4개국을 찾았다. 1월28일부터 3월초까지는 일본 브라질 등 5개국에서 39일이나 체류하며 현지시장 개척에 나섰다.
휠체어를 탄 불편한 몸으로 정상인보다 더욱 정열적이고 왕성한 해외경영활동을 펼치는 정명예회장의 모습은 성공적 기업인에 앞서 감격적인 인간승리의 표본이기도 하다.
정명예회장은 한창 한라그룹이 뻗어가던 89년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모진 시련을 맞았다. 그러나 그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다시 일어나 일년의 거의 3분의 2를 해외에서 보내는 왕성한 활동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정명예회장의 현역시절 활약상을 보면 한라그룹이 25개의 해외법인을 거느린 재계 16위의 내실있는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정명예회장은 94년에는 205일, 95년에는 217일을 해외에 체류했고, 지난해에는 220일이 넘는 기간을 해외현장에서 보내 재계 총수중 가장 많은 해외출장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한라공조의 캐나다공장도 수차례 들러 문제점을 파악하고 보완을 지시해 현지화에 성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영권을 2세에게 넘기면서 『경영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해외경영만은 직접 챙기겠다』고 다짐했던 이 「휠체어의 부도옹」이 또 어떤 신화를 만들어낼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김동영 기자>김동영>
◎완성차업체·부품업체 해외 동반진출 본격화/93년후 현지공장설립 매년 30∼40건
자동차부품 업계가 해외투자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90년대 초까지 매년 10건 안팎에 그쳤던 자동차부품 해외공장 설립이 93년 들어 가속이 붙기 시작하면서 매년 30∼40건을 넘어서고 있다. 특히 초기 해외투자가 카 스피커 스테레오 등 노동집약형이 대부분이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브레이크 클러치 등 핵심부품 생산공장의 비중이 커져 해외진출이 차츰 내실을 쌓아가고 있다.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87년 아트전자공업이 호주에 자동차 스피커 합작공장을 세우면서 시작된 해외생산투자는 8년만인 95년말 현재 16개국 130건으로 늘었다.
이런 투자증가 추세는 완성차 업체들이 부품업체와의 동반진출을 서두르고 있어 전망을 밝게 한다. 전세계에 자동차 현지 생산체제를 갖추어 나가는 대우자동차는 우즈베키스탄 공장을 비롯해 폴란드 인도 루마니아 등 6개국 공장에 모두 64개 국내부품업체와 공동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현지에서 「기술 전수」를 노리고 부품 국산화율을 60∼80%까지 끌어올리도록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인도네시아 국민차사업에 뛰어든 기아자동차도 현지 부품업체의 품질수준이 낮은 데다 현지에서 99년까지 60%의 부품 국산화를 요구하고 있어 30여개 부품업체와 동반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이같은 동반진출 붐에다 만도기계 한라공조 등 자동차부품생산 전문업체들의 적극적인 해외공장 설립, 수출증가 등으로 국내부품산업은 당분간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품업체의 해외수출은 아직까지 카 오디오 시트류 등 저기술 품목의 비중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부품수출에서 에어 컴프레서와 카 오디오·스테레오가 수출량 1, 2위를 차지한데 비해 기어(17위)나 엔진(18위)이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김범수 기자>김범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