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용·저효율 청산/보다 자유로운 M&A/벤처기업 육성 초점/과감한 정책적 유인을이미 지나간 일이기는 하나 현 정권이 출범한 93년 이래 산업정책은 표류를 계속해 왔다. 이는 우리가 이렇다 할 수출산업을 갖지 못한 오늘의 현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명분상 자유주의와 산업구조조정을 표방하였지만 정부의 개입이 기업의 경쟁력과 시장기능에 역기능을 해왔다. 이러한 측면은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미국의 클린턴 제1기 정부가 적극적인 수출증대정책으로 성과를 거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최근 정부가 추진키로 한 산업구조조정은 비록 그 내용이 제한적이기는 하나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 경제위기의 해결은 과지출·소비와 함께 수출산업의 경쟁력 회복에서 찾아야 한다. 고비용의 해소도 중요하지만 저효율의 청산 역시 근본적인 과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산업구조조정의 초점은 보다 자유로운 기업간 합병·인수(M&A) 허용과 벤처기업의 육성으로 모아지는 것 같다. 구상중인 정책의 구체적인 실현은 하반기 이후로 미뤄질 수 밖에 없는듯 하다. 그러나 특화산업의 육성과 경쟁력 강화라는 차원에서 우선 그 방향만은 분명히 설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벤처기업은 첨단, 고부가가치 및 고효율을 지향하고 있으므로 정부는 경쟁촉진을 통해 그 파급효과를 극대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감한 정책적 유인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국내 산업구조의 가장 취약한 측면중의 하나는 산업간 및 부문간에 상호 유기적인 연관관계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벤처기업이 생산하는 재화나 서비스는 많은 경우 다른 산업이나 기업의 투입 중간재로 사용된다. 따라서 이 「모험적인 중소기업」들이 제조업을 비롯한 전 산업에 걸쳐 생산성 증대에 기여할 수 있게 하는 정책적 배려가 요구된다.
산업구조조정은 정부의 시장개입을 의미한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정부의 역할이 시장경제의 테두리를 확고히 하고 그 기능을 활성화하는데 두어져야 한다. 또한 세계무역기구(WTO)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요구하는 국제규범의 범위내에서 정부지원이 시행되어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전제를 지키면서 정부의 전반적인 산업정책 및 수출산업의 발전전망 등이 뚜렷하게 제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산업구조조정의 근본적인 취지의 하나가 국가적, 그리고 기업의 차원에서 전문화의 촉진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어 갈수록, 국내외 시장구분이 엷어질수록 적극적인 특화노력이 더욱 절실하다. 또한 한국적 경제여건(시장규모나 부존자원)을 고려할 때 결연한 특화의 노력이 없이는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경쟁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J 네이스비트는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인하여 기업규모가 커질수록 비효율, 고비용, 비신축성 및 관료화와 같은 부작용을 안게 마련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적 현실은 이러한 추세를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대기업의 세 확장에 따른 과당경쟁은 자동차산업의 예에서도 그 폐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재고누증, 수출위축 또는 고용감소 등 문제가 한둘이 아니라고 전해진다. 그뿐아니라 신규사업자의 등장은 앞으로 국제적 가격인하 경쟁으로 인하여 반도체에 이어 제2의 수출 충격을 가져올 수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보고서는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경제력 집중이 더욱 심화하고 있는데 더하여 30대 기업의 자기자본비율은 오히려 악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같이 산업구조조정이 긍정적, 부정적인 측면을 다같이 안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기업의 전문화, 경쟁력 강화 및 체질 개선이 가능한 반면 경제력 집중을 한층 부추길 수도 있다. 얼마전 대기업들이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과제들 중에서도 「전문화」는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바로 이 때문에 퇴출장벽의 제거 및 공정거래의 확립 등을 포함하는 전반적인 경쟁정책의 강화가 동시에 요구된다.
끝으로 정치권에 당부하고자 한다. 경제대책회의와 같이 실효성 없는 기구의 운영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경제가 경제논리에 의하여 돌아가도록 여건을 마련하는데 주력해 달라는 것이다. 조속히 한보사태가 매듭지어져 정치·사회 안정이 경제안정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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