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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최고령 현역 39세 이만수(한국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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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최고령 현역 39세 이만수(한국인터뷰)

입력
1997.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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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까지 뛴 선수’로 남았으면/구단 체력테스트 좋은 결과/힘 다할때까지 뛰는게 프로/93년 위기 팬들 격려로 극복/내년 시즌 끝나면 미로 연수부질없이 망설이거나 무엇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을 눈앞에 둔 이만수(39·삼성)는 12일 개막한 97프로야구를 새로운 마음으로 맞고 있다. 프로야구선수로서는 이미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꺼질줄 모르는 투혼으로 올해도 당당히 그라운드에 등장했다. 이만수는 82년 프로야구출범때 뛰었던 144명의 원년멤버중 유일하게 남은 현역선수다. 「명예퇴직」 「조기퇴직」이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그는 「명퇴」를 거부하며 「40세 선수」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헐크」 이만수는 프로야구 첫안타 첫홈런 첫타점의 주인공이다. 또 통산 최다홈런(250개)을 비롯해 타격부문의 여러가지 기록을 보유중이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프로야구를 사랑하는 선수다. 수차례 구단으로부터 강한 은퇴권유를 받았지만 이를 뿌리치고 갓 입단한 신인들 못지않은 열정을 그라운드에서 불사르고 있다. 최고스타 자리를 무서운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이제는 빛이 나지 않는 조연자리에도 누구보다 만족을 느끼는 이만수. 아직도 홈런을 하나 치면 껑충껑충 뛰면서 그라운드를 도는 그의 모습은 예전과 변함이 없다. 프로에 데뷔할 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올시즌을 맞았다는 「아저씨」 이만수를 만나 「명퇴」를 거부한 이유와 그의 야구인생을 들어봤다.<편집자 주>

―40세까지 현역으로 뛰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까.

『당연하지요. 30을 넘어서면서 결심한 것이기때문에 반드시 내년까지는 선수로 뛸 생각입니다. 물론 내년에 구단에서 재계약을 안하겠다면 어쩔 수 없겠지요. 하지만 구단도 저의 굳은 결심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40세 현역」은 이만수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도 운동을 그만두고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프로야구가 하루이틀에 없어질 스포츠는 아니지 않습니까. 앞으로 프로야구를 걸머질 후배들에게 야구를 잘했다는 소리를 듣기보다는 40세까지 선수로 뛴 이만수로 기억되길 더 바라고 있습니다. 여기서 멈춘다면 목표를 세우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

―일년의 반을 운동장에서 살아야 하고 그동안 쌓아온 성가가 훼손될지도 모르는데 굳이 40세까지 뛰겠다고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마시절에는 채 30세가 되기 전에 시들어 버리는 선배들이 많았습니다. 분명히 더 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프로가 생긴후에도 조로현상은 여전합니다. 진짜 프로라면 실력연마에 최선을 다해야 할 뿐아니라 뛸 수 있을때까지 뛰는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팬들의 기억에 남는 선수가 많아야 프로가 살 수 있습니다. 40까지 뛰겠다고 밝힌후 팬들로부터 격려전화가 수없이 걸려왔습니다. 한번은 50세의 회사원이라는 분이 회사에서 명퇴대상이어서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라며 전화를 하셨습니다. 그분은 물론 자신이 인생선배이지만 저의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운동선수도 40까지 뛴다는데 「명퇴」때문에 위축된 자신이 더욱 초라해 보였고 설령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것같다고 말하더군요』

―93년에 은퇴위기에 몰렸었고 지난해에도 똑같은 입장이었는데 당시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에 상의할 사람도 없었고 외로웠습니다.또 언론이나 구단에서도 이만수시대는 끝났다고 공공연히 말했습니다. 23년간 오로지 야구밖에 모른 저는 오히려 이런식으로 내몰린다는게 한스럽고 야구한게 후회스러웠지요. 아마 신앙의 힘과 집사람이 없었다면 93년에 은퇴했을지 몰라요. 구단모임에 초청조차 받지못해 자존심은 상할대로 상했고 연봉을 20%나 삭감당했는데 야구할 맘이 들겠습니까. 하지만 집사람이 여기서 그만두면 애들과 팬들에게 약속한 게 다 깨지는 것이라며 용기를 북돋워주었습니다. 또 팬들이 집으로 격려전화를 하고 구단에 항의전화를 한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95년 김성한, 지난해에 박철순씨가 은퇴할때는 누구보다도 안타까워 했다는데.

『성한이는 저하고 나이도 같고 프로입단도 같이 했습니다. 은퇴한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알고 곧바로 전화해 40까지 같이 뛰자고 애원했지요. 그러나 성한이도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고 부상때문에 은퇴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를 듣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광주구장에서 은퇴식을 할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더라구요. 지난해 철순이 형이 은퇴한다고 했을때도 전화로 적극 만류했습니다. 후배들을 위해 더 뛰자고 말했지만 철순이 형이야 나보다 나이도 많고 투수이기때문에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두명의 원년멤버가 떠난후 혼자라는 생각때문에 부담이 더 많은 게 사실입니다』

―강도 높은 훈련을 새까만 후배들과 같이 해야되고 동서남북으로 이동하면서 경기를 하다보면 힘이 부칠텐데 체력에 문제는 없습니까.

『지난해 구단에서 전선수를 상대로 체력테스트를 했는데 저도 놀랄 정도로 후배들보다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국 체력도 정신력과 관계가 있는 것 아닐까요. 아무리 체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정신력이 해이해지면 만사가 귀찮을 수 밖에 없잖습니까. 체력은 규칙적인 생활로 유지합니다. 프로입문후 16년동안 야구장, 집, 교회만 오가면서 쓸데없는 일에 한눈 팔지 않은 게 큰 힘이 됐습니다. 중학교 1학년때 야구선배가 제 동기생들을 모아놓고 무조건 담배를 피우라고 강요했죠. 선배들의 강권에 다 담배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방망이로 수십대를 맞으면서도 끝까지 버텼습니다. 나중에는 선배가 지쳐 독종이라면서 더이상 담배를 강권하지 않았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술 담배의 유혹이 많았지만 끝까지 금욕한 게 지금까지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중 하나입니다』

―구두쇠라는 별명이 있지만 선행도 많이 하고 가정생활도 누구보다 충실한 편이라고 하던데.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하는데…. 말하기가 쑥스럽네요. SOS마을, 성보원 등에 연봉의 10분의 1을 보냅니다. 야구좀 하다보니까 상금도 많이 타고 부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때마다 모아서 연말에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곤 한 게 사실입니다. 프로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가정에 충실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만 나면 집사람이나 아이들과 함께 보내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집사람은 많이 떨어져 지내다보니 결혼한지 20년이 되도 신혼기분이라며 이해해 줘 더욱 고맙게 생각합니다』

―은퇴후 계획은.

『내년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고 2년간 미국 LA다저스로 연수갈 계획입니다. 충분히 지도자 수업을 받은후 팀을 이끌어 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정연석 기자>

□약력

▲58년 9월12일 대구에서 출생

▲대구 중앙초등학교(72년) 대구중(75년) 대구상고(78년) 한양대(82년) 졸업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스 입단(82년)

▲부인 이신화씨(39)와의 사이에 2남.

▲주요 수상경력:83년 정규시즌 MVP, 84년 프로야구사상 첫 타격 3관왕(타율, 타점, 홈런), 3년 연속 홈런왕(83, 84, 85년) 골든글러브 5회(83, 84, 85, 86, 87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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