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근·현대사 억센 소용돌이속 3대에 걸친 백·녹씨 가문 휴먼드라마/이념·권력투쟁의 격정 우리상황과 비슷역사의 구체적인 줄기는 다르지만 한국과 중국에서 근·현대사를 겪었던 백성들의 삶은 많은 부분 닮아 있다. 외세의 침탈과 신분제도의 붕괴, 일제로부터의 수모, 이념갈등 등 소용돌이치는 구조적·이념적 변화 속에서 희생의 몫은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돌아갔다.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 깊은 상처를 남겼음은 물론이다.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이 우리 근·현대사의 격정을 지낸 인간 삶을 다룬 작품이라면, 첸중스(진충실·55)의 「바이루위안(백록원)」(전 5권 한국문원간·임홍빈 강영매 번역)은 중국의 민초들이 살아야 했던 역사를 사실적으로 조망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19세기말부터 50여년간 중국 산시(섬서)성의 작은 마을 바이루위안을 둘러싸고 그 부락의 대표적 성씨인 바이(백)씨와 루(록)씨 가문이 3대에 걸쳐 펼쳐나가는 인간드라마이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생존과 가문 그리고 이념을 위해 몸부림치다 결국 역사 속에 매몰되는 인간군상의 삶이다.
이 작품의 큰 줄기는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인생유전이다. 변화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옷을 바꿔 입으며, 때로는 형제의 가슴에 칼을 꽂기도 하고, 때로는 원수의 무리와 동행한다.
바이루위안의 촌장 바이쟈쉬엔(백가헌)은 2남 1녀를 두었다. 장남 바이샤오원(백효문)은 아버지의 뜻을 어겨 족장 후계자의 자리를 동생에게 물려주고 아편에 중독돼 방황하다가 국민당 관료로, 해방 후에는 공산당 간부로 변신한다. 귀염둥이 딸 바이링(백령)은 신학문을 배운 신여성. 공산주의에 투신해 라이벌 루씨 집안의 장남인 루자오펑(록조붕)과 함께 활동하다가 혁명근거지의 토벌 작전 때 체포돼 생매장당한다.
루씨 집안의 큰 어른 루즈린(록자림)은 바이자쉬엔과의 권력 투쟁에서 번번히 패배하나 그 경쟁심 때문에 간계를 부리는 인간이다. 그러나 자식들의 반항으로 편치 않은 삶을 산다. 바이링을 사랑하던 두 아들 루자오펑과 루자오하이(록조해)는 공산당과 국민당으로 갈려 서로 피를 요구하는 사이가 되고 결국 동생은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는다.
이러한 등장인물들의 욕망과 사상이 교직하면서 여러가지 사건을 만들어낸다. 풍수지리와 미인계 등 온갖 책략을 동원해 맞서나가는 평생 라이벌, 며느리를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시아버지, 막노동꾼에서 비적으로 그리고 국민당 간부를 거쳐 공산당 간부로 변모하는 머슴의 아들 등….
<루즈린은 민병대에 연행되어 단상 아래에서 비판을 받으면서 웨웨이산과 텐푸셴 그리고 헤이와가 처형되는 장면을 지켜보아야만 하였다. 총성이 울리는 순간 그는 총탄이 자신의 귓바퀴를 스치고 세 사람의 머리를 향했다고 느꼈다. 반혁명을 처형하는 이 집회를 주재하는 사람이 바이샤오원인 것을 보고는 마음 속으로 외쳤다. 루씨 집안은 바이씨 집안을 영원히 이기지 못하는구나…>루즈린은>
이념과 권력투쟁의 갈등이 낳은 참혹한 모습이 우리 할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아픔과 거의 다를 바 없다는 점에 새삼 놀라게 된다.
이 소설의 특징은 짜임새 있는 구성, 과감한 생략과 비유를 통한 리듬감이다. 한마디로 흥미진진하다. 현란하고 다채로운 중국 고유의 풍습도 선명하게 표현했다.
산시성 출신의 작가 첸중스는 23세에 첫 소설을 발표한 이래, 중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창작에 몰두해 온 작가이다. 현재 중국 작가협회 산시성 분회 주석인 그는 지금까지 90편에 달하는 소설과 50여편의 르포를 썼다. 전국 규모의 문학상을 아홉차례 받았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중편소설집 「첫여름」과 단편소설집 「늙은 백양나무 뒤로 돌아가다」 등이 있다.
그는 한국어판 발간에 부쳐 『나의 작품이 한국 독자와 큰 공감대를 만들기 바란다. 작가의 가장 큰 보람이자 글쓰기의 목적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권오현 기자>권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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