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이란의 외교분쟁이 급기야 서방의 무차별 「이란 때리기」로 확전되고 있다. 독일은 물론 유럽연합(EU) 15개국이 이란 대사소환을 결의하고 미국이 이란의 고립화를 촉구하는 등 서방이 온통 「마녀사냥」에 나선 분위기다.이번 사태는 92년 9월 독일 베를린의 한 카페에서 벌어진 이란 반체제인사 4명의 살인사건이 이란 최고위층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베를린 지방법원이 10일 최종 판결하면서 비롯됐다.
3년여간 극도의 보안속에 공판을 진행해 온 베를린 지법은 이날 2명의 주범과 2명의 종범이 저지른 당시 범행이 정적을 제거하려는 이란 최고위층의 살인 명령에 의해 자행됐다고 판시했다. 사실상 국가배후의 테러로 규정한 것이다. 앞서 독일검찰은 이 사건을 기소하면서 『이란의 정신적 지도자인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와 하셰미 라프산자니 대통령이 명령권자』라고 적시했었다.
이에 발끈한 이란은 즉각 독일주재대사를 긴급소환했으며 독일도 대사소환과 함께 이란 외교관 4명을 추방했다. 잠정적 외교단절 상태에 들어간 셈이다.
양측 공방의 승패는 불보듯 훤하다. 어차피 이란이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유럽 국가들이 독일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고 나선데다 이란이 독일과의 관계악화로 감수해야 할 외교·경제적 손실이 막대한 탓이다. 이란에 있어 독일은 그간 서방중 최대의 우호국이었다. 한해 18억달러의 교역규모가 말해주듯 독일은 그간 미국의 저지에도 불구, 이란과 통상관계를 확대해 왔다. 외교차원에서도 독일은 유럽과 이란의 관계개선에 적극 앞장서왔다. 92년부터 EU와 이란간 쌍무 회의인 「중대한 대화(Critical Dialogue)」를 정례화한 것도 독일의 주도 덕분이었다. 따라서 독일과의 관계악화는 곧 이란이 서방으로부터의 고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란의 아킬레스건을 쥐고 있는 독일은 정례 협의에 불참하겠다고 발표했다. 여타 EU국가들도 정례협의 중단을 검토하는 등 강경일변도이다.
미국도 이같은 분위기에 편승, 『유럽국가들은 미국의 대이란 고립정책에 동참해야 한다』며 목청을 돋우고 있다. 그간 독일을 비롯한 유럽국가의 대이란 접근을 우려해온 터에 양측 관계에 쐐기를 박을 수 있는 호기를 잡은 것.
하지만 미국의 바람대로 유럽이 전면적인 대이란 봉쇄정책에 나설 지는 미지수이다. 독일도 이란에 대한 준엄한 경고 차원에서 강경책을 고수할 뿐 중동의 교두보격인 이란과의 완전한 관계단절은 내심 원치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결국 「공」은 이란쪽에 넘어와 있다. 자존심 강한 이란이 국제테러국의 오명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꼿꼿이 버티느냐, 아니면 고립탈피를 위해 타협노선을 택하느냐에 사태 장기화 여부가 달려있다.<이상원 기자>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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