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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허파’ 숲이 죽어간다/산자락마다 들어선 주택·위락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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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허파’ 숲이 죽어간다/산자락마다 들어선 주택·위락시설

입력
1997.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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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허리 자른 연결도로·수많은 등산로에 갈수록 뼈를 드러내는 서울의 산/게다가 토양산성화·수종선정 소홀로 녹지비율은 26%까지 감소에 감소 거듭/나무가 죽으면 도시도 죽는다는데…거대도시 서울은 세계적인 대도시로는 예가 드물게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남산(262m)을 가운데 두고 북쪽으로는 북한산(836m) 도봉산(717m) 수락산(638m), 동쪽으로는 불암산(420m) 아차산(345m), 남쪽으로는 관악산(632m) 청계산(348m)이 높고 낮게 솟아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 해마다 봄이면 계속해온 국가적 규모의 조림사업에도 불구하고 서울 주변의 산은 아카시아 현사시나무 등 고유 생태계와 어울리지 않는 수종이 숲을 점령한데다 관리소홀과 토양 산성화 등으로 숲다운 숲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 그린벨트제도를 비롯한 각종 행정규제의 틈을 뚫고 서울 주변 산자락마다 들어선 주택가와 각종 시설물이 녹지축을 끊어 생태계를 파괴하고 대기오염을 가중시키고 있다.

보전도 개발도 아닌 어정쩡한 산림정책이 도시림을 파괴하고 시민들의 휴식공간을 박탈해 온 것이 서울의 현실이다.

임업연구원에 따르면 인왕산을 비롯한 서울 산림은 산자락의 20%가 주택건설로 파괴됐다. 산자락은 야생동물이 숲에서 내려와 먹이와 물을 찾고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는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산자락을 생태공원이나 자연학습장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택건설로 날이 다르게 사라지고 있다.

임업연구원 조현제 박사는 산자락 파괴로 인한 피해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대도시 산림의 3분의 1정도가 수맥이 끊겼습니다. 계곡에 물이 없어요. 물은 산자락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데 흐를만한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수계에 의지해 사는 생물도 사라지게 마련이지요』

서울 도심과 가까워 많은 시민이 손쉽게 찾는 인왕산 등산로를 따라오르면 곳곳에 아카시아 나무 군락을 볼 수 있다. 인왕산 기슭을 점령하고 있는 아카시아 나무는 40∼50년은 되는 것들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소나무가 듬성듬성 보이고 군부대에서 사용하던 철조망과 간이 건축물 등이 방치돼 있다. 군데 군데 생활쓰레기도 마구 버려져 있다.

눈에 띄는 새라고는 8∼10m 높이의 나무위에 앉은 까치가 대부분이다. 조박사는 『풀이나 작은 나무는 없고 큰 나무만 있기 때문에 그위에 집을 짓는 까치만이 살아 남는다』고 말했다. 숲에는 교목과 관목, 풀 등이 골고루 섞여 있어야 하는데 서울 산림은 무계획적인 조림 때문에 교목만이 발달한 결과라는 것.

관악산도 다를 바 없다. 평일에도 수천명의 등산객이 찾는 이 산은 잘못된 산림이용의 폐해를 보여 주는 표본이다. 산기슭에 자리잡은 식당 등 위락시설, 수없이 뚫린 등산로, 그리고 안양과 서울을 잇기 위해 산허리를 잘라내고 건설한 연결도로가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뒤엉켜 있다.

아카시아와 현사시나무 대신 심은 참나무 신갈나무 등이 곳곳에 말라 죽어있다. 토양과 기후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고유수종이라고 심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립대 환경생태연구실의 조사에 따르면 관악산 삼막사 인근 토양은 71년 pH5.4에서 93년 pH4.5로 10배 가까이 산성화했다. 이런 산성토양에서 버틸 수 있는 나무는 아카시아가 고작이다. 또 활엽수림에 잣나무 등 침엽수를 심어 햇빛을 받지못해 말라죽는 예도 많다.

전문가들은 도시림의 이같은 훼손은 도시환경파괴의 출발점이라고 지적한다. 우선 산림 훼손은 녹지축 연결을 가로 막는다.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이경재 교수는 『서울 산은 봉우리만 남아있다』고 단정했다. 남산에서 시작된 흐름이 도시 주변부로 전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녹지축이 끊어지면 동식물 생태계가 단절되고 인공림이 조성되지 않는한 전체 녹지면적도 줄게 된다.

현재 서울의 녹지 비율은 40년전보다 10%포인트 이상 줄어든 26.7%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이교수는 녹지부족이 정신질환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의 경우 녹지비율이 30% 아래로 내려가면 시민들의 집단적인 심리상태에 변화가 온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어요. 성격이 급해져 교통사고가 잦아 지고 항상 불안감을 안고 살게 됩니다. 산지가 우리보다 적은 일본 도쿄(동경)는 녹지축 연결을 통해 「녹지 30% 확보운동」을 벌이고 있을 정돕니다』

서울 산림 수목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아카시아 나무를 제거하는 문제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서울시는 95년부터 관악산 도봉산 인왕산 등 주요 산의 아카시아 현사시나무 등을 베어 내고 참나무나 신갈나무 등 고유수종을 심고 있다. 99년까지 26만여 그루를 베어 내고 50만 그루를 새로 심는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아카시아는 산성토양에 강한 수종이고 벌목하면 움을 트고 살아나 다른 나무까지 휘감는다. 또 아카시아 군락이 새로운 군락으로 자연스럽게 바뀌고 있는 곳도 많아 충분한 기초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임업연구원의 조박사도 기초조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국유림은 영림계획에 따라 나무를 심고 관리하지만 도시림은 무분별한 개발과 조림이 반복돼 복구책이 난감한 상태입니다. 우선은 도시림의 식생과 구조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리정보 데이터베이스의 구축이 무엇보다 시급해요』

◎개발이냐 보전이냐

국내 산지는 전국토의 65%를 차지하는 중요한 자연자원이다. 따라서 산지의 적절한 활용은 국토개발 차원에서 중요한 관심사가 돼 왔고 개발이냐, 환경보전이냐의 팽팽한 논란이 거듭돼 왔다.

서울 도봉산과 북한산 케이블카 설치계획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서울 도봉구는 지난해 도봉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키로 하고 내무부에 사업승인을 요청하면서 케이블카 설치가 환경보전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지하철 7호선 완공으로 하루 평균 3만명, 연간 1,000만명 이상의 등산객이 도봉산을 찾을 것으로 예상돼 케이블카가 없으면 엄청난 토사유출과 산림훼손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즉각 반박했다. 경기북부 환경운동연합 안창희 사무국장은 『등산객 통제 대책은 세워 놓지 않고 케이블카부터 설치하면 환경파괴가 가중될 뿐』이라며 『수익확보만 염두에 둔, 산기슭부터 정상까지 산전체를 오염시키는 그릇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그동안 산림개발에서 개발업자의 이해만 앞세워 산지개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이윤을 겨냥한 개발업자들이 그럴듯한 환경보전책을 개발계획에 넣어 놓았다가도 사업이 시행되고 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 일쑤였다고 말한다. 또 정부나 지자체도 일단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를 극복하고 나면 사후의 감시·감독은 소홀히 해 국민적 불신을 받게 됐다고 주장한다. 특히 산림개발의 근거인 환경영향 평가에 대한 불신이 보전만능주의식 개발저지 운동을 낳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93년 환경영향 평가법 제정 이래 환경영향평가에 의해 저지된 산림개발 사업은 하나도 없었다. 환경영향 평가에서 협의한 내용을 어기고 산림을 훼손한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지난해 환경부 조사 결과 공공사업의 43%가 환경영향 평가의 협의내용을 위반했다.

「개발은 곧 환경파괴」라는 한국적 인식은 이런 현실적 경험이 낳은 것이어서 진정한 「환경친화적 개발」이 가능해지려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선은 업자와 주민, 지자체, 환경단체의 충분한 사전 협의와 엄격한 사후관리의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것이 시급하다.<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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