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속의 정신적 풍요최근 한 가구회사에서 주관한 가구전시회에 가본적이 있다. 유명한 외국디자이너들이 설계한 의자 및 가구들중에서 눈길을 끈 것은 이탈리아 밀라노출신 건축가 알도 로시(Aldo Rossi)가 설계한 다용도 장 「캐빈 엘바(Cabine dell’Elba)」(1979년작)였다. 연하늘색 과 달걀색의 원목으로 만들어진 이 가구는 삼각형과 원, 사각기둥의 기본 골격만 살린데다 콩알만한 크기의 황동색 주물을 촘촘히 박아넣어 선을 강조한 단순한 작품. 완벽하게 절제된 가운데 은근히 풍겨나는 정감과 온화함은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이 작품은 얼마전 인상깊게 보았던 조선시대의 보자기를 연상시켰다. 현대 추상화를 연상시키는 디자인과 놀랄만큼 현대적인 색상의 조화는 『아, 우리 선조들의 미의식이 이렇게 수준높은 것이었구나』하는 감탄을 절로 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곧 나는 두 작품 사이의 공통점, 두 작품이 함께 연상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단순함속에 정신적인 풍요가 녹아있기 때문이었다.
알도 로시는 기하학적인 형태와 엄격한 내적 질서라는 건축언어를 통해 일상적인 삶 주변의 조형물들을 재구성해내는 것으로 유명한 건축가 겸 가구디자이너다.
그의 가구디자인은 이탈리아의 도시풍경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선과 형, 색의 원형을 엿보는 즐거움을 준다. 캐빈 엘바가 보여주는 원과 사각기둥의 이미지는 로마시대에 지어진 신전들의 사각구도와 원형기둥들, 파스텔톤의 담벽들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이다. 가구 하나에 민족의 생활상과 거기서 나온 정서를 담는 노력을 우리나라 가구에서도 찾을 날은 언제 올 것인가. 캐빈 엘바를 보면서 한국 고가구와 옛날 생활용품들의 질박한 멋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재창조하는 디자이너들의 관심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했다.<김정곤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김정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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