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가 가고 있다. 외국에서 하는 것을 본받아 서울에도 20세기에 남아있는 날을 거꾸로 세는 전광판이 나붙었다. 뭔가 사람을 초조하게 만드는 이 날짜 세기는 지나간 세기를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세기를 맞는 마음가짐을 갖자는 뜻일 터인데 20세기말은 또한 1,000년 단위의 끝이기도 하니 더욱 우리를 얼떨떨하게 만든다. 1,000년 단위 걱정은 스케일 큰 사람들에게 맡기더라도 보통 사람 평생 나이에 좀 더 보탠 100년 단위를 되돌아보지 않고 속 편할 수는 없다. 봄가을 방송개편 때 TV드라마 마무리하고 새 것 만드는 것처럼은 안되며 쌓아 올린 것 위에 딛고 올라서야 하는 물리적 법칙은 역사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문화를 한량들 놀음 정도로 여기고 있던 우리로서는 「새로운 세기는 문화의 세기」라는 말이 마치 무슨 무속인들 예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저세상 갈 날이 별로 많이 남은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이 벌이는 난장판의 「돈문화」, 외국산 술로 벌이는 「폭탄주문화」, 입시과외와 해외유학에 쏟아버리는 「교육문화」 등에서나 문화를 느껴볼까? 그런가하면 공연장에는 우리 땅의 20세기 문화사를 복습하자는 것인가. 때아닌 신파조의 뭔지 모를 공연물이 대중 입맛에 맞는다는 구실로 「손뼉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이 시점에서 신파극이라니 대체 이게 무슨 짓들인가!) 설령 대중이 그런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더 정신의 양식이 되는 것을 꺼려하리라는 생각은 오히려 안다는 문화전달자들이 갖고 있는 딱한 선입견에 불과하다.
봄마다 예술의 전당에서 9년째 열리는 「교향악축제」에서는 올해 10개의 교향악단이 20세기 음악을 반드시 하나 이상 프로그램에 넣고 있다. 참여에 더 의의가 컸던 초창기에는 일년 내내 한 곡만 연습한 교향악단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교향악단들이 20세기 음악을 기꺼이 프로그램에 수용해 주었다. 특히 전야제를 장식한 국립경찰교향악단의 연주는 인상적이었다. 비록 직업 교향악단은 아니지만 연주도 훌륭했고 무엇보다 20세기 음악이 세 곡이나 들어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20세기 음악에 대한 객석의 반응이 첫날부터 대단히 호의적이라는 사실이다. 대중이 선입견없이 직접 부딪혀 얻어가는 반응은 언제나 정직한 법이다. 『현대(?)음악은 어렵다』는 터무니없는 「군소리」와 더불어 100년이라는 기간 동안에 만들어진 걸작들이 뒤늦은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 어찌 초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조성진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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