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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소평의 유산/박찬식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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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소평의 유산/박찬식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7.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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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봄의 톈안먼(천안문)사태는 민주화운동이면서 반부패운동이었다. 당수뇌부의 안타까운 설득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점점 격화하고 있었다. 당시 총서기 자오쯔양(조자양)이 덩샤오핑(등소평)을 단독면담했다. 등은 그 때 중앙군사위 주석직만 남기고 모든 공직에서 은퇴해 있었다.그 자리에서 조는 사태의 진상을 설명한 뒤 등의 장남 덩푸팡(등박방)을 처벌할 것을 호소했다. 잔질인협회 회장인 그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갖가지 이권에 개입해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 자신은 적극적인 의사가 없었을지 몰라도 냄새 나는 곳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파리」들이 그냥 놔두지 않았다.

푸팡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중국사람들이 혁명원로 자녀들의 세도를 비웃어 말하는 「태자당」 가운데는 그런 골칫덩이가 많았다. 조는 등이 그의 아들에 읍참마속의 결단을 내려준다면 태자당 모두를 감옥에 넣지않아도 사태를 쉽게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눈물로 간청했다.

정치일선에서 물러났지만 등은 여전히 혁명의 살아있는 상징이며 「황제」였다. 그 무게를 빌리자는 것이었다. 사실 태자당 모두를 처벌하는 것은 곧 정치개혁을 의미했다. 기득권층의 반발에 대처할만한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았다. 성난 군중을 무마할 수 있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등의 반응은 뜻 밖이었다. 아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요구에 그는 격노했다. 당장에 조의 모든 직위를 박탈하고 「반혁명분자」의 낙인을 찍어 연금했다. 그 뒷자리에 상하이(상해)시장 장쩌민(강택민)을 불러다가 앉혔다. 그리고는 인민해방군 탱크의 캐터필러 아래 베이징(북경)의 봄은 압살됐다.

그 당시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홍콩발 급보들 중에는 8년이 지난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는 보도도 많다. 이런 얘기도 있다.

등이 어째서 그렇게 격노했을까. 한 홍콩신문은 그 이면에 눈물의 사연이 숨어있다는 내용의 분석기사를 보도했다.

그가 문화혁명 때 「주자파」로 몰려 실각한 뒤 가족의 생사도 모른채 가택연금과 공장노동을 반복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자신의 생명처럼 아끼던 장남 푸팡은 그 때 북경대에 재학중이었다. 아버지가 실각하자 그도 홍위병의 박해를 면할 수 없었다. 차라리 자살하고 말겠다고 대학건물 3층에서 뛰어내렸으나 척추가 부러지는 중상만 입고 목숨을 건졌다. 눈을 떠보니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 신세였다.

그때부터 그는 거리를 기어다니며 걸인처럼 살 수 밖에 없었다. 등이 돼지우리 같은 부랑자 수용소 한 구석에서 짐승처럼 변한 아들 푸팡을 찾아낸 것은 10년후 4인방을 몰아내고 복권에 성공한 뒤였다. 등에게 그 아들은 건드리기만 해도 피가 흐르는 가장 아픈 상처였던 셈이다.

지금 강주석에게는 그가 남긴 유산을 처리해야 할 짐이 얹혀있다. 권력층을 비롯해 이제는 온 사회에 만연한 부패를 청산하는 일이다. 지난달 등 사후 처음 열린 전인대(국회)에서는 작년 한해동안의 부정부패사범 사법처리결과를 보고한 최고인민검찰원에 대해 전체의 40%가 넘는 반대·기권표가 쏟아져 당수뇌부를 경악케 했다.

중국의 정치개혁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명제다. 그러나 잘못 건드리다간 정권 자체가 뒤집어질 위험이 있다. 강의 리더십이 아직 불안하기 때문이다. 등이 그 때 아들을 처벌하고 개혁에 착수했더라면 지금의 중국은 훨씬 안정된 모습일 것이다.

국가지도자 부자간의 말못할 사연은 우리에게도 있다. 그러나 「한보정국」의 수라장에서 벗어나 나라의 앞날을 열어나가자면 아무래도 김영삼 대통령의 결단 외에는 다른 길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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