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 등 다수 다치면 일대격랑 불가피/일부선 3김 영향력 여전 ‘미풍’ 예상도해일이 밀려오듯 「정태수 리스트」가 정치권을 엄습하고 있다. 「정태수 리스트」 수사가 드세게 진행될 전망이어서 정치권이 수사 이후에도 현재의 구도를 유지할 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검찰이 밝힌 소환대상자는 여야의원 20명을 포함, 33명이다. 전례가 없을 정도로 대규모인 숫자상으로나, 단시일에 수많은 정치인들을 조사한다는 절차상으로도 심상치않은 일대사건임에 분명하다. 더욱이 정국을 통제하는 중심축이 와해돼 있다시피해 검찰 수사의 칼날이 어디까지 미칠지, 소환정치인중 「사상자」가 얼마나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만약 다수의 정치인이 사법처리되거나 정치적으로 낙마한다면, 그 결과는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정치판의 일대변혁을 초래할 지도 모를 일이다.
한 중진의원은 『정태수 리스트는 정치적 해일이다. 해일이 휩쓸고 지나가면 심할 경우 집을 새로 지어야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정계재편의 가능성마저 있다는 얘기다.
만약 중진들이 사법적으로 단죄받거나 정치적으로 다친다면, 또 소환 대상자중 다수가 정치생명에 타격을 입는다면, 정계재편은 불가피해질 수 있다. 이 경우 정계재편이 곧바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정치권은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쇄신의 압박을 받게 된다. 특히 대선정국의 흐름과 맞물려 정파간 이합집산 내지는 아예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촉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계재편은 가능성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만만치않다. 쿠데타나 혁명이 없는 상황에서는 좀처럼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사에서도 정계재편은 4·19혁명, 5·16, 12·12쿠데타가 발생했을 때에 이루어졌다. 정변이 없는데도 정계재편이 이루어진 경우는 90년 3당합당 때이다. 따라서 검찰 수사만으로 정치권이 송두리째 뒤바뀌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검찰수사에서 다수의 정치인들이 혐의를 벗을 수도 있다. 사법처리되는 의원이 극소수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분위기와는 달리 자체적으로 생채기를 수습, 일단 대선정국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영삼 대통령이나 국민회의 김대중, 자민련 김종필 총재 등 3김씨의 정치적 이해가 정계재편과는 거리가 멀다. 김대통령은 이미 권위를 많이 상실한데다 퇴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엄청난 후유증을 감수하는 재편을 시도할리 없다는 게 중론이다. 김대중, 김종필 총재도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는 마당에 자신들의 입지를 뒤흔들 변혁을 바라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3김이 현 정치권의 중심축이기 때문에 이들이 재편에 적극적이지 않다면 정계재편의 현실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게 다수설이다. 심지어 이들 3김의 정치적 공통이해는 검찰 수사에도 영향을 미쳐 일정수준에서 수사가 마무리될 것이라는 성급한 추측마저 있다.
하지만 한보사태, 「정태수 리스트」는 한국정치가 누적시킨 모순의 일단이라는 사실에서 간단치 않은 정치적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더이상 현질서를 유지하기가 힘들 정도로 지금의 정치구조는 한계에 봉착해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검찰수사의 농도와는 별개로 정치권에는 새로운 쇄신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만에 하나 검찰수사가 봉합으로 간다면, 정치권 뿐만아니라 검찰 법조계도 일대 개편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오고 있는게 지금 국민정서의 흐름이다.<이영성 기자>이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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