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대상 당초 예상 뛰어넘는 태풍급/억울한 옥추한 석 제대로 가려낼 계기검찰이 10일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여야 정치인에 대한 소환수사 계획을 밝힘에 따라 그동안 물밑에서만 맴돌던 정치권 수사가 마침내 본격화했다.
검찰은 9일 전격적으로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방침을 밝힌뒤 불과 하룻만에 구체적인 소환계획을 발표함으로써 이례적으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더구나 검찰이 밝힌 소환조사 대상자 33명은 이미 구속된 홍인길 정재철 황병태 권노갑 의원과 김우석 전 내무장관 등 5명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어서 조사규모도 당초 거론되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특히 이들 소환대상자 중에는 현역의원만 20명이 포함돼 있는데다 조사 첫날인 11일 신한국당 김덕룡, 국민회의 김상현, 자민련 김용환 의원 등 여야의 중진급 의원들부터 소환될 예정이어서 이들의 사법처리여부와 상관없이 검찰조사 자체가 향후 대선구도를 포함한 정국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조사규모, 소환순서와 함께 국회의원들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IPU(국제의원연맹)총회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현역의원을 대거 소환조사키로 한 정황 등은 앞으로의 검찰수사가 매우 강도높게 진행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심재륜 대검중수부장은 이날 『국민적 의혹해소 차원에서 결연한 의지로 공명정대하고 투명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 말해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했다.
심중수부장은 이와 함께 『수사기밀을 유지하고 증거인멸을 막기 위해 명단을 미리 공개할 수는 없으나 선별수사, 또는 축소수사의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전체 숫자를 밝힌다』고 말해 사안의 예민한 성격상 투명성 확보에 특히 신경쓰고 있음을 나타냈다.
검찰은 당초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에 대한 초기 수사과정에서 「리스트」를 확보하고도 『정치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사를 피했다. 4일 대검찰청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에서 김기수 검찰총장이 특위 의원들의 공세에 밀려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작업 여부를 검토한 뒤 필요하면 조사하겠다』고 밝혔으나 그때도 적극적인 수사를 기대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결국 정태수씨와 김종국 한보그룹 전 재정본부장이 정치인들에게 돈 준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8, 9일의 국회 청문회가 정치권 수사의 기폭제가 됐다. 더구나 청문회에서 여야 특위위원들의 집중 추궁에도 불구, 정치권 로비의 진상이 일부라도 규명되기는 커녕 의혹만 잔뜩 부풀려지는 바람에 국민들의 여론이 한층 악화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검찰은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을 위해서라도 「옥석」을 가려줄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여권 고위관계자도 『검찰발표도 아니고 출처불명의 설에 의해 정치생명에 심대한 타격을 입는 것은 문제』라면서 『억울한 사람이 있다면 소명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해 검찰수사를 적극 뒷받침했다. 결국 정치인 수사는 국민적 의혹 해소라는 기본 의도와 함게 이같은 정치권의 현실적 요구와도 맞아 떨어진 결과이다.
따라서 이같은 전후사정을 감안할 때 이번 수사가 정치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법처리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이 대부분 정치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고 주장할 것이 뻔해 대가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설사 사법처리 대상이 있더라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김상철 기자>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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