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으로 사경 헤매며 세 동생 찾아/“50여년만에 찾은 집터엔 잡초만…”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54년동안 중국에서 살다 폐암에 걸려 지난달 25일 영주 귀국, 6개월 시한부 삶을 살고있는 정수재(72) 할머니가 동생 3명을 애타게 찾고 있다.(본보 3월26일자 35면 보도)
18세 때인 1943년 쌀 1백근과 이불 한 채에 팔려 위안부로 끌려간 정할머니는 집주소(충남 강경군 강경읍 황금동 80)와 4세 아래인 첫째 여동생 이름이 「순애」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다. 둘째 여동생과 막내 남동생은 자신보다 7세, 15세 가량 아래이고 부모님과 5세 위인 오빠는 사망했을 것이라고 정할머니는 추측하고 있다.
『고향 집 앞에서 보면 저녁 노을에 붉게 물들던 실개천이 마을을 감싸고 흘러가던 모습이 기억나요』
정할머니는 지난달 28일 고향인 강경읍을 찾았다. 50여년만에 찾아간 집터는 그러나 잡초와 돌더미만 뒹굴었고 읍사무소에서 호적을 샅샅이 뒤졌지만 동생 순애씨의 이름은 없었다. 당시 마을 친구 김옥순(72) 할머니와 감격적인 조우를 했지만 김할머니 역시 부모님 산소 위치나 동생들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실낱같은 희망이 무너지자 정할머니의 병세는 급속히 악화했다. 함께 영주 귀국한 이금순(70) 할머니가 여동생과 올케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급기야 지난 3일 의식을 잃고 서울중앙병원에 입원했다.
죽음의 공포가 짙게 드리운 정할머니의 핼쑥한 얼굴에는 동생들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다.<홍덕기 기자>홍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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