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드러나는 한보리스트의 실체로 정치권이 휘청거리고 있다. 정태수 총회장으로부터 검은 자금을 받은 리스트의 실체와 취득의 내용이 드러나는데도 한심한 것은 눈치만 보고 있는 검찰의 태도다. 검찰은 우선 한보 리스트를 밝히고 즉각 돈을 받은 의원들을 소환, 조사한 후 의법조치해야 한다.지금까지 돈을 받은 정치인들은 적게는 20∼30여명, 많게는 50∼6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청문회에서 정총회장은 김덕룡 김상현 김용환 의원 등에 대해 「다른 사람을 시켜 돈을 주었음」을 간접 시인했고 한보의 전 재정본부장이던 김종국씨는 돈심부름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변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그는 또 김정수 의원 등과 문정수 부산시장에게도 자금전달을 간접시인, 검은돈의 수수는 중대한 문제로 부상됐다.
물론 정치인들은 국민적인 분노를 감안할 때 자금을 받은 것이 확인될 경우 정치적으로 치명상을 입게 된다. 그렇다 해도 한보사건 초기에 관련 의원들이 떡값 명목이니 순수한 정치자금 운운하여 태연하게 변명을 한데 이어 이번에도 당사자들이 「한보의 누구도 만난 적 없다」 「옷깃을 스친 적도 없다」 「정치적 음모다」고 하는데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만일 단 한푼도 받지 않았음에도 지목됐다면 발설자나 관계 언론을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죄로 고발하는 한편 검찰에 떳떳하게 조사를 자청해야 할 것이다.
사실 검찰은 진작 한보 리스트와 자금 취득내역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눈치 살피기에 급급했다. 거액을 받은 정치인들이 떡값이니 정치자금 운운할 때 검찰은 이에 화답하듯 대가성이 없어 뇌물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지난 4일 특위의 자료검증 자리에서 검찰총장이 죄가 안되기 때문에 형사소추 않고 있다고 한 것은 말도 안된다. 정치자금법은 이 법에 의하지 않은 자금은 불법임을 적시했고 또 영향력을 지닌 자리에 있는 자에게 준 돈은 당장의 대가성이 없다 해도 뇌물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임에도 검찰이 이들을 수사하지 않은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 하겠다.
이제 늦었지만 검찰이 나서야 한다. 무슨 눈치를 보며 침묵만 지킬 것인가. 정총회장 등의 진술로 일찌감치 확보한, 돈받은 정치인들에 대해 전면수사에 나서야 한다. 우선 세 의원을 부르고 이어 해외체류중인 장재식 의원 등을 차례로 소환, 돈받은 내역과 역할을 공개적으로 가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정총회장이 구축한 정경유착의 뿌리를 규명하고 의심스런 돈을 받은 의원들은 가차없이 엄벌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정밀 수사를 통해 억울한 의원들의 누명과 혐의를 벗겨줄 필요가 있다.
검찰이 즉각 전면적인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은 국민의 바람이다. 정총회장의 궤변과 관련 의원들의 일방적 변명의 진부를 밝힐 의무가 있다. 검은 돈에 대해 검찰이 언제까지 「죄가 안된다」고 할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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