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잡힌 리스트 “정치권 대폭풍”/“확인할 수 없다” 사실상 간접시인/자금수수 규모도 어느정도 파악「정태수 리스트」가 그 실체를 확연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야의 대선주자를 포함,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들의 면면이 계속 확인되고 있다. 자금수수규모도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 가고 있다.
그동안 정태수 리스트를 둘러싸고 제기된 갖가지 의문과 궁금점을 푸는데 열쇠역할을 한 사람은 김종국 전 한보재정본부장. 그는 8일 한보특위의 이틀째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신문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식의 부인하지 않는 화법으로 정태수 리스트의 밑그림을 그려냈다.
김씨가 이날 구사한 답변방식은 크게 세가지. 이중 『확인할 수 없다』와 『대답할 수 없다』는 말은 사실상 신문내용을 우회적으로 긍정한 것으로 비쳐졌다. 이에비해 『모른다』는 답은 청문회 진행상황에 비춰 자신이 정말 모르거나, 자신이 아는 한 신문내용이 틀린 경우에 주로 내놓았다.
김씨의 진술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씨로부터 자금을 받은 정치인들 명단. 김씨에 의해 이날 새롭게 확인된 「리스트 정치인」은 신한국당의 김정수 박종웅 박성범 의원과 문정수 부산시장이다. 김씨는 또 전날 정총회장이 간접시인했던 신한국당 김덕룡 국민회의 김상현 자민련 김용환 의원의 리스트 포함 사실을 재확인, 세사람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중 최대의 관심사는 와병중인 신한국당의 민주계 좌장 최형우 의원의 리스트 포함여부였다. 김씨는 이사철(신한국당) 의원이 언론보도를 인용, 『최의원이 정총회장으로부터 6천만원을 받은 일이 있느냐』고 묻자 『모른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러나 『최의원을 통해 국민회의 김상현 의원에게 5천만원이 전달된게 사실이냐』는 물음에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최의원이 리스트에 관련됐을 수도 있다는 인상을 풍기면서 김의원을 리스트의 수렁에 더욱 깊게 빠뜨리는 발언이었다. 김씨는 이에 비해 김의원의 수수액이 2억원이 넘는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밝혔다.
김씨는 다른 신한국당 인사들의 자금수수사실, 액수가 5천만원정도인 사실은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말로 확인도장을 찍어줬다. 또 이인구(자민련) 의원이 『김용환 의원에게 돈심부름을 한 일이 있느냐』고 캐묻자 『확인해 줄 수가 없다. 말을 못하겠다는 의미로 들어달라』며 이를 사실상 인정했다.
이에앞서 김씨는 전날 정씨가 간접시인했던 김덕룡 의원의 자금수수여부를 놓고 여당의원들과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하지만 그는 부정적인 답변을 끌어내려는 의원들의 노력을 번번이 『대답하지 못함을 양해해달라. 확인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수포로 만들어버렸다.
이날 김씨의 「간접화법」증언은 상당한 무게와 근거를 갖고 있다는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비록 본인은 부인했지만 김씨가 정회장 주변의 자금흐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한보의 실세였다는 점이 그 근거다. 실제로 김씨는 정씨가 즐겨 사용했던 자금전달통로였다는 게 검찰 수사기록상 나타나 있다. 따라서 그의 발언은 단순한 간접시인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씨의 이날 증언은 한보 국정조사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김씨를 통해 확인된 정치인들의 숫자는 정치권에 나돌고 있는 정태수리스트의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신효섭 기자>신효섭>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