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정국’ 안전핀 뽑혔다/검찰 정치권 재조사 회오리 예상/대선자금 의혹 불길 확산 가능성「정태수 리스트」의 베일이 서서히 벗겨지고 있다.
정태수 한보총회장이 7일 국회 한보특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 김덕룡 김상현 김용환 의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간접시인함으로써 설로만 떠돌던 「정태수 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나게 됐다. 정치권은 즉각 충격과 긴장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여야는 정씨의 「사실확인」이 던진 정치적 파장의 강도를 실감하며 잔뜩 긴장하고 있다.
「정태수 리스트」는 한보정국의 주요뇌관중 하나이다. 정씨의 이날 청문회진술은 뇌관의 안전핀을 뽑은 것이다. 정씨의 입을 통해 확인된 「리스트 정치인」들은 돈의 성격이나 규모에 관계없이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정씨가 확인해준 「3김의원」은 물론 지금까지 리스트에 오르내린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관련사실을 부인해 왔다. 그러나 이들의 부인이 사실로 판명날 경우 이들은 지금까지 거짓말을 해 온 셈이 되는 만큼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한보 돈」은 「검은 돈」이다. 수조원 은행빚의 일부일 수도 있다. 공식후원회비가 아니라면 이들 의원들은 어떠한 명목에서든 「검은 돈」을 떳떳지 못하게 수수한 셈이 된다.
검찰은 당초 정씨로부터 이들 정치인에게 돈을 준 사실을 진술받았지만 범죄구성요건이 안된다며 조사자체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좀 달라졌다. 우선 이들 세 의원 등이 오히려 검찰조사를 촉구하고 나서고 있다. 정태수 리스트의 철저한 규명을 촉구하는 여론이 비등해 질 것임은 불문가지다. 이쯤되면 정치인들에 대한 검찰의 재조사도 반드시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태수 리스트」에 올라있는 20여명의 현역의원 모두가 이제는 검찰의 「수사 리스트」에 오를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들 세 의원들은 여야 3당의 중진들이다. 게다가 이중 2명은 차기대선 예비주자로 거명돼온 인물이다. 이번사태는 여야의 대선구도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그칠 것같지가 않다.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들만이 상처를 입는 선에서 사태가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 전반에 정화의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같다. 「정태수 리스트」는 왜곡된 정치자금의 고질적 유통구조를 드러낸 단서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번사태는 앞으로 대선자금의혹 등 인화성이 강한 제2의 정치자금 스캔들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계재편이나 정치권 물갈이로 이어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검찰의 수사의지가 관건이긴 하다. 지금 정치권에는 「한보리스트」로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다.<정진석 기자>정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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