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한보특위 청문회에 첫 증인으로 나선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의 증언태도는 한줌의 성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국민들 역시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온갖 불법행위로 나라를 뿌리째 흔들고 경제를 무너뜨렸음에도 겉으로는 반성운운하면서도 답변에서는 오만한 태도로 국민을 우롱하고 농락했다고 볼 수 있다. 국회는 한보비리의 장본인인 정총회장의 증언을 이런 식으로 넘겨서는 절대로 안된다.이번 청문회는 청문회의 본산국인 미국에서도 예가 없을 정도로 이례적으로 구치소에서 전국에 TV로 생중계되어 국민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규명해야 할 의혹의 핵심은 한보철강의 사업승인과 특혜융자경위, 융자의 실세, 몸통, 검은 로비자금과 대선지원자금, 융자금의 불법은닉, 김현철씨와 관계 등이었다.
그러나 질문에 정총회장은 「모르겠다」 「생각 안난다」 「재판이 진행중이므로 말할 수 없다」 「한 일이 없다」 「아니다」 「70이되면 결재해도 기억이 안난다」며 불리한 것은 철저히 잡아뗐다. 또 집요하게 추궁하면 「나는 잘 모르고 직원들이 한 일이다」라고 떠넘기기 식으로 일관했다. 더구나 눈이 아프다는 이유로 시종 눈을 감고 답변하는 태도도 그렇고 「한보에 음지만 있는게 아니다」 「부도는 생니를 빼는 것이다」라는 설교에다 때로는 호통까지 쳐 국민을 아연케 했다. 정말 이것이 중죄혐의자의 속죄했다는 태도인가. 당연히 위원장은 회의를 중단, 국민을 모독하는 불성실한 답변에 엄중 경고했어야 했다.
의원들의 질문은 일반적인 수준에 머무러 실망을 안겨줬다. 그동안 밝혀진 검찰의 수사내용과 언론보도, 관계기관보고 청취에서 얻은 일부자료 수준을 넘지 못해 정총회장에게 끌려다닌 인상마저 주었다. 질문에서 여당은 정태수 리스트의 확인, 정총회장과 야당 두 김총재와의 관계 및 금품수수 등에, 야당은 대선지원자금, 김현철씨의 2,000억원 리베이트설 등의 질문에 치중함으로써 정략을 드러냈다. 검은 로비자금 대선지원자금과 함께 자금은닉의 흑막을 규명하지 못한 것은 아쉽기 짝이 없다. 의원들은 청문회스타를 의식한 백화점식 질문을 지양, 당별로 팀워크 플레이를 전개해야 한다.
그래도 첫날 정총회장 증언을 통해 일부 여야의원에게 간접적으로 검은 자금을 준 것과 한보가 5·6공 자금 600억원을 쓴 것을 확인한 것은 수확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불법자금인 만큼 법집행의 형평성을 위해서도 돈을 받은 의원들은 모두 소환, 후원회비나 기탁금 명목이 아닌 것은 반드시 의법 조치해야 할 것이다.
한보청문회가 부실질문과 정총회장의 멋대로 답변, 오만한 답변으로 끝났지만 그렇다고 청문회 자체의 존폐를 들먹이는 것은 성급하다. 특위는 다음 증인들에게 성실답변, 진실답변을 강력히 촉구하고 의원들 역시 한보비리의 실체규명에 더욱 분발해야 한다. 특히 정총회장은 반드시 다시 세워 성실한 증언을 받아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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