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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리스트’ 이제는 조사 불가피/한보 청문회­검찰 수사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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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리스트’ 이제는 조사 불가피/한보 청문회­검찰 수사 방향

입력
1997.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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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주면 죄되는 것 안다” 정씨 뇌물성 간접 시인이른바 「정태수 리스트」가 검찰수사의 도마에 올랐다. 검찰은 그동안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에게서 돈을 받은 정치인들에 대해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수사계획이 없음을 밝혀왔다.

그러나 국회 한보특위 국정조사를 계기로 「정태수 리스트」가 핵심쟁점으로 부상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4일 대검찰청에 대한 국회 한보특위 국정조사에서 김기수 검찰총장은 「정태수 리스트」에 대한 의원들의 끈질긴 추궁에 『사실확인을 해서 내용이 맞는 사람만 내놓되 반드시 확인절차를 거칠 것이다』고 답변했다. 「정태수 리스트」에 대한 수사방침을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물론 김총장의 표현은 매우 신중하고 소극적이었다. 『앞으로 확인작업 여부를 검토해서 옳다고 판단되면 공개하겠다. 이 경우라도 국회윤리위원회에 통지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김총장의 답변이었다.

이같은 답변은 『당사자한테 확인도 안하고 범죄구성요건이 안된다고 단정할 수 있느냐』는 의원들의 추궁에 밀린 궁여지책의 답변이라는 인상이 짙었다.

그러나 7일 국회 한보특위 청문회에 첫 증인으로 나온 정씨의 증언으로 검찰이 더이상 소극적 태도를 고수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씨는 이날 의원들의 집중적인 추궁에 신한국당 김덕룡, 국민회의 김상현, 자민련 김용환 의원에게 직원을 통해 돈을 건넨 사실을 시인했다. 정씨는 또 구체적인 명단은 말하지 않았지만, 이들 외에 여야 의원 상당수에게 돈을 준 사실도 인정했다.

모든 국민이 텔레비전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정씨 스스로 여야 중진을 포함한 다수의 정치인들에게 돈을 주었다고 밝힌 것이다. 검찰로선 이제 여론의 부담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더구나 정씨는 『돈을 주면 죄가 된다는 것을 안다』고 말해 자신이 제공한 돈이 떳떳한 목적이 아니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물론 검찰은 『아직까지 아무런 방침이 서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검찰이 이처럼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데는 현행법상 사법처리가 어려운데다 자칫 정치적 목적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한보특위에서 여야 정치인들이 「정태수 리스트」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데는 상대방에 대한 공격의 호재로 이용하거나, 자신의 불명예를 씻으려는 목적도 없지 않은 듯하다. 따라서 검찰은 「정태수 리스트」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하더라도 비밀리에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운전사나 부인 등 측근인물을 통해 사실관계를 먼저 확인하고, 정치인 본인은 가급적 검찰청사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조사한다는 것이다.

현재 「정태수 리스트」에는 이미 구속기소된 홍인길 황병태 정재철 권노갑 의원을 빼고 12, 13명의 여야 정치인이 올라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아직 구체적인 명단을 공개하길 꺼리고 있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이날 아침 일부 언론에 보도된 명단에 대해서도 『일부 맞는 것도 있지만 틀린게 많다』면서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려 했다.

검찰은 이들 정치인들이 청탁의 대가로 돈을 받았는지, 다시 말해 금품수수의 대가성 여부를 밝히는데 수사의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대가없이 단순히 정치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면 현행법상 사법처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받은 돈의 액수도 검찰수사의 중요 고려사항이 될 수 있다. 정치인과 기업인 사이에 억대이상의 돈이 오갔다면 일단 대가성을 의심할 만한 단서가 된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그러나 『당사자들이 정치자금 명목이었다고 진술할 경우 대가성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정치인들의 추가 사법처리 가능성이 높지 않음을 시사했다.<김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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