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이지메’ 피해학생 그 이후/학교 그만두고 이달말 미 이민/무릎파열·간질증세 등 지금도 병원 4군데 다녀/정박아와 비슷해지고 잠자다 헛소리 여전/애가 원해 이민은 가지만 치료비 댈 길이 막막하네요지난해 2월 「한국판 이지메」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선천성 심장병 환자 장모(18)군은 결국 지난달 학교를 그만뒀다. 3학년이 되면서 급우들이 견디기 힘든 말을 마구 던졌다. 『같은 반이 됐으니 잘 지내보자, 말 잘 들을 거지?』 『걔들(소년원에서 출소한 가해학생들)이 죽이겠다고 벼른다는데 넌 이제 큰일났다』 『학교앞 골목에서 어떤 애들이 널 찾고 있더라』 장난삼아 던진 말이었지만 이미 심신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 진 그에게는 엄청난 폭력이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 최숙자(54)씨는 가스총을 사주고 달랬지만 장군은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미국으로 이민가자』며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완강히 버텼다.
결국 최씨는 지난 3일 아들을 휴학시켰다. 그리고 이달말이면 불안한 미국 이민길에 오를 예정이다.
장군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95년부터 초·중학교 동창인 급우 C모(17)군 등 5명으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했다. 상상하기 어려운 악랄한 가혹행위가 1년동안 계속됐다.
라이터불로 손등이나 팔목을 지지는가 하면 컴퍼스나 송곳으로 손등을 찌르고 손가락에 연필을 끼워 짓눌렀다. 점심을 먹지 못하게 하거나 화장실에 가두고 겁을 주는 건 다반사였다.
아들 손등에서 50여군데나 송곳에 찔린 자국을 발견한 최씨가 가해학생들을 경찰에 고발해 C군 등 4명은 소년원에 넘겨졌다. 이들은 소년원에서 선도교육을 받고 출소해 모두 다른 학교로 전학했다.
이들이 제대로 법의 심판을 받았는지와는 관계없이 선천성 심장판막증 환자인 장군에게는 무릎뼈 파열과 간질 증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남았다. 지금도 4군데나 병원을 다녀야 해 병원비만도 월 150만원이 넘는다.
최씨는 아들의 모습이 하루하루 달라지던 때를 회상하면서 연신 눈물을 닦았다.
『중학교 때만 해도 성적이 중상위권에 속했어요. 그런데 고교 1년동안 시달림을 당하면서 애가 완전히 바보처럼 변해 갔어요. 성적은 최하위로 곤두박질했고 지능지수(IQ)도 87로 떨어졌어요. 거의 정신박약아나 다름 없잖아요. 아직도 잠자다가 헛소리를 하고 무릎 꿇고 비는 시늉을 해요. 정신과에서는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는 해리현상으로 전쟁을 치른 군인들에게서나 나타나는 증세라고 하더군요. 무엇보다 안정이 중요한데 자신이 이민을 원하니 따를 수 밖에 없었어요』
애초에 최씨가 미국이민을 신청해 놓은 것은 15년전. 아들의 심장병 수술을 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국내에서 고등학교까지는 마치게 하고 싶었고 천직인 교직을 선뜻 포기하기도 어려웠다. 이제 막상 이민을 결심했지만 눈앞이 캄캄하다.
『이민가면 3년정도 학교에도 안 보내고 늘 곁에 붙어서 돌봐 줄 생각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해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돼야 정신병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심장수술은 자칫하면 뇌손상을 초래할 수 있어 우선은 정신병과 간질증세를 치료해야 한대요. 60이 넘은 애아버지가 직업을 갖기도 어려울 거고 나는 늘 애곁에 있어야 하니 어떻게 생활을 하고 어떻게 치료비를 댈 지 막막합니다』<염영남 기자>염영남>
◎실태 및 문제점/고등학생 43% “학교안팎 폭력 경험”/가해자,급우가 가장 많아/피해학생 심하면 자살충동
학교 폭력의 대부분은 같은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교내 폭력이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지난해 3,000여건의 교내외 폭력 사례(복수 응답)를 분석,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학교폭력은 등하교길(6.7%), 집근처(6.1%), 학원가(3.4%)에서보다 학교안(63.3%)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같은 반 학생이 가해자인 경우가 43.3%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같은 학년 다른 반 학생(13.4%), 상급생(11.5%), 교내 폭력서클(4.1%) 등의 순이었다. 한편으로 교사에 의한 폭력도 5%에 이르러 눈길을 끌었다.
피해 유형별로는 육체적 피해(60.3%), 따돌림·협박·위협(49%), 금품갈취(23.8%), 성적 피해(3.8%), 숙제 해주기 등 공부관련 피해(3.1%) 등으로 나타났다.
상담자는 중학생이 48.3%로 거의 절반을 차지했고 초등학생이 24.3%로 고등학생 23.3%보다 많았다. 또 상담자의 35.3%가 여학생이었다.
학교폭력 피해는 일반의 예상을 뛰어 넘는다.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표갑수 교수가 최근 전국 고등학생 9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3.2%가 학교 안팎에서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피해학생은 폭력을 당한 뒤 복수심(34.9%), 자기학대(21.4%), 결석 충동(10.8%)은 물론 자살 또는 가출 충동(5.4%)과 대인 공포(5%)까지 느꼈다고 응답했다.
그런데도 이들중 상당수는 보복이 두렵고 신고해도 별 도움이 안된다는 이유로 피해 사실을 주위에 알리지 않는다. 학교폭력 근절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구리·남양주지역 중·고생 500명에 대한 구리 YMCA의 조사에 따르면 피해학생의 53.9%가 아무에게도 이를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보복이 두려워」가 23.1%, 「알려봤자 소용이 없어서」가 22.3%로 나타났다. 실제로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조사에서는 피해학생의 65.1%가 경찰, 교사, 부모 등에게 알렸지만 처리가 흐지부지했다고 답했다. 또 알리고 나서 상황이 더 나빠졌거나 보복당했다는 응답도 9.3%나 돼 학교폭력에 대한 대응체계의 문제점을 입증했다.<유성식 기자>유성식>
◎여학교도 안전지대 아니다/잘난척 하거나 인기있는 학생 ‘표적’/집단폭행은 물론 남학생 동원 성폭행도
여학교도 결코 폭력 안전지대가 아니다. 교내에 남학교 뺨치는 폭력조직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고 남학생들과 손잡고 주먹을 휘두르는 여학생들도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는 지난 1년간 923명의 학생이 직접 찾아 오거나 전화를 걸어 교내폭력으로 인한 고민을 털어 놓았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96학년도 학교폭력 피해 실태」 조사에 따르면 여학생이 가해학생의 24.3%를 차지했고 남녀가 함께 폭행에 가담한 것도 4.4%에 달했다. 전체 피해학생 가운데 여학생은 30% 남짓했고 중학생이 가장 많았다. 또 피해학생의 절반 이상이 같은 반이나 같은 학년 학생들에게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학교에서의 폭력유형은 남학교보다 오히려 다양했다. 협박, 욕설, 따돌림, 구타 등은 물론이고 무리를 지어 한 학생을 때리는 집단 폭행, 남자 친구를 동원한 폭행, 성폭행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사례가 보고됐다.
A양은 고교 입학 후 불량서클 가입을 강요하는 1년 선배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금돼 각목으로 두들겨 맞았다. A양은 이사건 이후 학교를 휴학하고 병원에 입원, 외과치료와 함께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중학교 2학년 B양은 같은 학교 불량 학생들의 본드흡입 요구를 거절했다. 이를 이유로 학교 안팎에서 모두 15차례나 폭행을 당해야 했다. 보복이 두려워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알릴 수도 없었다. 그러나 전신에 타박상을 입고 한쪽 팔이 부러지는 사태에까지 이르면서 사건이 드러나 가해 학생들은 모두 소년원에 보내졌다. 그렇다고 B양의 고통이 덜어진 것은 아니었다. 집단폭행에 따른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던 B양은 자살을 기도해 정신병 치료를 받으면서 학교까지 쉬어야 했다.
또 M여고 1년 송모(16)양 등 4명은 같은 반 학생 2명을 『평소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얌체처럼 행동한다』며 각각 전치 2, 3주의 상해를 입혀 경찰에 구속됐다. W고 2년 김모(16) 양모(16)양 등 8명은 『선배를 몰라 본다』는 이유로 최모(15)양 등 신입생 16명을 각목으로 때려 최양의 고막이 터지는 등 전치 1∼3주의 상처를 입혔다.
전문가들은 주로 소극적이고 심약한 학생이 표적이 되는 남학생과 달리 여학생은 ▲잘난 척하는 학생 ▲이기적인 학생 ▲교사나 동료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학생이 폭력대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염영남 기자>염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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