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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으로 승부 일 열도 휩쓴“진로 두꺼비”(초국경 경영시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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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으로 승부 일 열도 휩쓴“진로 두꺼비”(초국경 경영시대:15)

입력
1997.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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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싼 소주’ 불구 일 시장 점유율 2위/90년 300만불 수출서 작년 3,100만불 ‘폭증’일본에서 가장 대접받는 한국제품―. 가격이나 제품종류의 「청탁」을 가리지 않고 따진다면 그 자랑스런 주인공은 뜻밖에 진로소주이다.

한국 대중주의 간판 스타인 진로소주는 최근 일본 소주시장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누리며 한국제품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진로는 지난해 단일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230만상자(상자당 700㎖들이 12병)를 판매, 86개 일본소주 업체중 브랜드별 시장점유율 2위로 껑충 뛰어오르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는 95년의 4위에서 두단계 뛰어오른 것이며 91년 판매량(43만상자)에 비하면 5배나 늘어난 물량이다.

일본의 주류업계는 진로가 79년 일본에 진출한지 18년만에 이룩한 눈부신 성과를 놀라움과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 등 현지언론들은 「한국소주의 저력」이란 제목 등으로 진로의 폭발적인 성장의 비결을 파헤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들은 진로소주가 일본에서 이미 현지화에 성공한 한국의 3대 음식인 「야키니쿠(소육·불고기)·코리안 바베큐(갈비)·김치」와 함께 떼어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한국상품으로 인정하고 있다.

도쿄에서 손꼽히는 번화가인 록본기(육본목). 록본기내 일본 방위청옆에 위치한 진로의 현지법인 진로재팬 건물에는 이 법인이 직영하는 「진로가든」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한국음식을 일본인의 취향에 맞게 현지화시킨 고급 한식당으로 진로가 일본인들의 입맛을 파악하는 마케팅 현장이다. 95년초 처음 문을 연 이 식당은 평일 점심시간에도 예약 없이는 자리를 잡을 수 없을 만큼 일본인 단골들로 성시를 이룬다. 물론 이곳에서는 노란색 바탕에 빨간색 「진로(JINRO)」라벨이 선명한 진로소주가 테이블마다 빠지지 않는다. 이곳에서 진로소주 1병(700㎖) 가격은 2,000엔. 우리 돈으로 1만4,600원이다. 국내에선 고급식당에서나 3,000∼4,000원정도를 받는 진로소주가 이곳에선 양주가격으로 대접받고 있는 것이다. 진로는 더욱이 일본 현지에서 가장 비싼 소주로 꼽히는 「다카라(보)」보다 무려 10%정도 값이 비싸다. 일본인 주당들은 「다카이(고·비싸다)!」를 외치면서도 진로소주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그 이유는 한번 마시고 나면 결코 떨쳐 버릴 수 없는 진로소주의 독특한 중독성(?) 때문이다. 양주병 모양의 독특한 녹색병 속에 담긴 진로소주는 우선 국내에서 마시는 소주 맛과는 크게 다르다. 진로소주의 일본 진출이 20년의 짧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기에 그만큼 소주맛도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현지화한 것이다. 일본에 수출되는 진로소주는 단맛을 내는 당도가 국내 시판용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따라서 국내용처럼 혀끝을 감아올리는 단맛이 없어 한국 주당들에겐 생소하게 느껴지기 십상이다. 진로 소주가 현지화과정에서 맛변화를 추구한 원인에는 일본의 주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는 소주를 스트레이트로 마시지만 일본에서는 물이나 녹차와 같이 다른 음료와 섞거나 얼음과 함께 칵테일을 해서 마신다.

일본인들의 이런 습성을 끊임없이 연구해 섞어 마시기에 적합하도록 순수하고 깨끗한 제품을 개발해낸 것이 바로 진로두꺼비가 숱한 일본 「개구리」들을 물리친 비결이다. 즉 「맛의 승부」에서 당당히 이긴 것이다.

진로는 90년 300만달러에 불과하던 수출액을 지난해에는 무려 그 10배이상인 3,100만 달러로 끌어올렸고 올해 수출목표를 5,500만달러로 전년대비 77.4%나 높여 일본 소주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중에 있다.

진로는 특히 일본 소주시장의 점유율을 보다 높이기 위해 거미줄처럼 복잡하고 외국인들에겐 극단적으로 배타적인 일본의 주류 유통망을 파고드는데 사활을 걸고있다. 진로가 오늘날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현지 유통업자들과의 지속적인 유대관계가 이뤄져왔기 때문이다. 진로는 이들 유통업자들을 매년 수백명씩 국내에 초청, 한국의 문화와 진로기업의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등 일본 거래선과의 끈끈한 유대를 맺고 있다. 미국의 포드사 등 세계 유수의 공룡기업들이 일본에 진출하고도 현지 유통망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번번히 고배를 마셔야 했던 것을 감안할때 진로의 유통망 공략전략은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

일본의 대중주인 사케(정종) 대신 진로소주를 마시는 일본인 주당들은 종종 술잔을 기울이며 말한다. 『혹시 진로가 일본을 마셔버리는 것은 아닐까요』라고.

◎악명높은 일 술시장 장벽 진로 신뢰감으로 열었다/일 특유 ‘상도의’ 고려 끈끈한 거래 유지

「일본의 주류 유통시장이 열린다」

유통구조의 폐쇄성으로 악명높은 일본은 다른 선진국이나 한국제품에도 한결같이 「난공불락의 요새」로 꼽힌다.

막대한 무역흑자를 올리고 있는 일본은 미국 등 서방선진국들과의 무역협상때마다 폐쇄적인 유통질서를 개혁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지만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특별히 외국인들의 사업을 막는 제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 특유의 상거래관행 등 보이지않는 장벽들이 외국기업을 막고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주류업계는 진로소주가 거미줄같이 얽혀있는 주류 도·소매업계의 유통구조를 뚫고 들어와 지난해 일본 소주시장 판매율 2위의 성과를 올린 사건을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내 희석식 소주업체 86개중 가장 판매량이 많은 일본판 「진로」인 다카라(보)는 지난해 단일브랜드인 「준(순)」소주 300만상자를 판매, 시장점유율 6.5%로 진로소주(5%)의 약진을 겨우 저지할 수 있었다. 또 산토리사 소주는 지난해 180만상자 판매로 진로에 이어 시장 점유율 3.9%에 그치고 말았다. 이같은 상황속에서 진로에 이어 보해양조의 보리소주인 「비단」역시 전년에 비해 매출량 30%를 늘리며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일본 현지 소주시장에 「한국소주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진로가 일본에 진출한 79년 첫 인연을 맺은 현지 주류도매상인 도쿄 이바라기현의 가시마 주류도매회사는 현재까지도 20년 가까이 진로와 거래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진로는 이 소형 도매상이 다른 대형 도매상들보다 판매계약 등에서 떨어지지만 신뢰감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일본 유통조직의 생리상 외국기업으로 현지의 「상도의」를 고려, 아직까지도 거래를 지속하고 있다.

중간도매상과의 신뢰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진로의 소주 판매율 성장률에서 더욱 드러난다. 진로는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급성장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89년부터는 오히려 판매량이 정체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침체는 90년까지 계속됐다. 침체원인은 진로가 현지에서 주류판매면허를 획득, 현지 대리점들에게 거래관계를 끊을 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면서 판매협조를 기피했기 때문이었다. 진로는 우선 이들 중간상에게 신뢰감을 주기위해 각 사를 방문, 2,000년까지 대리점과의 신뢰관계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진로는 탄탄한 유통경로를 구축하기 위해 중간상에게 충분한 이윤을 보장해 줬다.

◎인터뷰/진로재팬 김태훈 지사장/“눈앞의 이익보다 인간관계에 중점”

『최근 일본인들사이에선 「진로소주를 마시며 한국을 알자」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진로소주는 이제 한국제품의 상징처럼 일본시장에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진로재팬의 김태훈(45) 지사장은 일본에서 진로소주 돌풍을 일으킨 주역이다. 김지사장은 미로로 통할 만큼 복잡하고 배타적인 일본 유통시장을 「두꺼비」같은 뚝심으로 파고들어 국내 어느상품도 이룩해내지못한 시장점유율 2위라는 빛나는 성과를 일궈냈다.

86년 도쿄(동경)사무소를 개설하고 일본 시장 개척에 본격 나섰던 그는 지난 10년간 도쿄와 오사카(대판) 등 일본 전역을 돌며 유통업자들과 일일이 만나 상담을 하는 등 발로 뛰었다. 그는 막강한 현지업체들을 누르고 시장 점유율 2위에 오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이사에서 전무로 2단계 승진을 했다.

그러나 감회도 잠시뿐, 김지사장은 도쿄를 중심으로 대도시에 불고 있는 진로소주 붐을 일본 전역으로 확산시키기위해 새로운 전략구상에 분주하다.

『진로소주 판매량을 늘리는 것과 함께 소주 유통망을 통해 카스맥주 인삼주 매실주 등 다른 상품들을 일본땅에 접목시키는 것이 앞으로의 최대관건입니다』

김지사장은 일본에서 사업을 하려면 무엇보다 일본인과 함께 협조하며 일한다는 생각으로 장기간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본에서는 최소한 10년을 계획해 사업을 해야한다』는 김지사장은 『섣불리 거래업체를 바꾸거나 단기간의 이익에 연연해 신의를 저버릴 경우 인간관계가 중시되는 일본 사회에선 자신의 무덤파기와 같다』고 설명했다.

일본진출 20년인 99년까지 소주시장을 완전석권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 김지사장은 진로소주의 탁월한 품질, 고급화, 일본현지화의 성공경험을 감안할때 목표달성을 낙관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장학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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