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걷어내고 앞을 향해 뛸때”/정부 신뢰회복 급선무… 국민과 ‘호흡’ 맞춰야/젊은이들 정신적 소양·새 지식 흡수 노력을지난해말 노동법개정을 둘러싼 파업사태에 이어 한보특혜 의혹, 김현철씨 국정개입 의혹 등으로 온 나라가 구심점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급기야 국가원로들의 모임인 「나라를 걱정하는 모임」(대표 서영훈)은 지난 2일 『우리는 땀흘려 쌓아올린 경제기적도 자칫 물거품이 될 지 모를 건국이래 가장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고 『정부와 정치지도자, 국민 모두가 크게 각성하여 지금까지의 잘못을 털고 경제를 회생시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대한변협회장을 지내고 현재 환경운동연합의 대표인 이세중 변호사를 만나보았다.<편집자 주>편집자>
□대담:박진열 사회부장
-무척 바쁘실텐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2일 이회장님을 비롯한 각계 원로들이 시국간담회를 갖고 경제회생을 위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습니다. 나라의 기본이 흔들린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을 해주십시오.
『우선 정치가 구심점을 잃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노동관계법을 둘러싼 파업, 한보특혜대출 비리사건,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국정개입의혹 등이 이어지면서 나라 전체가 위기상황에 빠져있습니다. 경제도 마찬가지 입니다. 한 해 무역적자가 230억달러를 넘어 GDP의 5%에 이르고 외채도 1,045억달러나 됩니다. 과거에도 오일쇼크나 중동전쟁 등으로 여러차례 경제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의 위기는 이 보다 훨씬 심각하고 복합적입니다』
-대국민호소문에서 원로들은 정부와 정치지도자 전국민이 모든 역량을 결집해 경제를 살리는데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현재의 국가적 위기상황은 정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부와 국민이 호흡을 맞춰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위기관리 능력에도 많은 문제점들을 노출시켰습니다. 현 위기상황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에게도 문제는 있습니다. 외국제품을 무분별하게 사들이는 풍조와 과소비는 산업자금의 고갈을 불러왔고 외채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이같은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부와 기업, 국민 등 경제주체가 씀씀이를 10%이상씩 줄여 근검절약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합니다. 정부는 경제 성장만 홍보했지 GNP 1만달러 시대에 맞는 정신자세에 대한 교육과 계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땀흘리던 옛 모습, 옛 자세로 돌아가야 합니다』
-현재 한보사건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와 국회 국정조사가 진행중에 있습니다. 이번이야말로 현철씨 문제를 포함해 지금까지 거론되던 모든 의혹들을 털어버리는 계기가 돼야한다는 여론이 높습니다.
『한보사건은 한국의 이미지를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실추시켰습니다. 또한 검찰의 수사 자세는 국민의 생각을 외면한 채 진행되었습니다.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 진상을 밝혔더라면 정부와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지금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깨끗이 해결하지 못할 때 엄청난 위기상황이 초래될 것입니다. 한보사건 수사과정에서 현철씨가 국정에 관여했다는 점이 어느정도 드러났습니다. 대통령의 아들이라도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어떤 형태로든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는 것이 국민들의 생각입니다. 이를 외면한 채 사건을 덮어버리려 한다면 「함께 위기를 극복하자」는 정부의 호소에 국민들이 따라주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가 의혹을 말끔히 씻어낸 뒤 「이제 앞을 향해 힘차게 뛰자」며 국민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한 때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으셨는데, 한보사건 역시 관료와 정치인의 부패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정치인의 부패는 주요 고비 때마다 나라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문민정부의 부정부패추방 노력이 실패한 이유는 대통령 자신은 청렴한 정치를 실천했지만 측근 인사들에 대한 관리가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패추방을 위한 정열은 있었지만 철학과 원칙이 결여되고 지속적인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정치인의 부패를 추방하기 위해서는 돈 안쓰는 깨끗한 선거가 전제돼야 합니다. 현행 선거법은 돈 안드는 선거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선거법을 고쳐 우선 옥외집회를 금지시켜야 합니다. 선거운동의 관행인 세 과시형 옥외집회는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 돈을 낭비하게 만듭니다. 다음으로 철저한 선거공영제를 실시해야 합니다. 개인차원의 선거운동은 옥내에서의 정책토론 정도만 허용하고, 나머지 선거운동은 모두 공영제로 해야 합니다. 엄청난 돈이 드는 지구당조직 상설운영도 폐지해야 합니다. 부정부패의 추방은 돈 안쓰는 정치풍토 조성을 통해 정경유착을 근절하는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노동법 개정파동에서부터 한보사건까지 나라를 뒤흔든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사회에는 여전히 타협을 모르는 흑백논리가 뿌리깊게 지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흑백논리를 추방하고 토론문화 정착을 위한 의식개혁이 필요합니다. 특히 정치권에 토론문화가 빈약합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토론문화가 없어 정당활동의 민주적 기풍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판과 토론은 없고 특정 개인의 독선과 독주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이 우리의 정치현실입니다. 이를테면 권력에 대한 견제를 위해 내각제 논의가 제기되어도 색안경을 쓴 일부 정치인들에 의해 불순한 의도로 매도되고 더이상의 토론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또 획일성과 경직된 단순논리만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회분위기는 바뀌어야 합니다. 다양성과 유연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회장께서는 환경운동연합 대표와 한국시민단체협의회의 공동대표, 시민운동지원기금 이사장을 맡고 계시는 등 시민운동에 큰 관심을 갖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경실련 테이프 사건으로 시민운동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건강한 시민운동을 더욱 확산시키기 위해 좋은 의견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경실련 사건은 시민운동의 이미지에 먹칠을 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경실련에 몸담은 몇몇 개인의 잘못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를 이유로 시민운동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됩니다. 현재의 위기상황은 정부만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시민정신에 입각한 시민운동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 입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를 선택하고 있지만 권력에 대한 견제기능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 부정부패 추방, 언론 바로세우기, 생활의 거품을 걷어내기 위한 생활개혁운동, 외제품 안쓰기 운동 등 시민운동단체들이 해야할 과제는 너무도 많습니다』
-지난 6일이 2000년 마이너스 1,000일 이었습니다. 이 기회에 21세기에 대비한 당부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물질적 풍요에 반비례하는 정신적 빈곤이 우리 사회가 안고있는 문제입니다. 젊은이들은 물질적 풍요를 조절할 수 있는 정신적 소양을 쌓아야 하고, 또 우리 고유의 풍속과 전통을 배우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21세기는 정보의 시대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고 새로운 지식을 많이 흡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계층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도 힘써야 합니다. 「국적없는 동경」에서 벗어나 「국적있는 문화」를 만드는데 노력해야 합니다』<정리=서사봉 기자>정리=서사봉>
□약력
▲1935년 서울 출생 ▲56년 서울대 법대 재학중 고등고시 행정·사법과 동시합격 ▲60∼63년 춘천, 서울지법 판사 ▲63년 변호사 개업 ▲82년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위원 ▲85년 서울지방변호사회 제1부회장 ▲〃 운화학원, 예일학원 이사 ▲87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88년 방송위원회심의위원 ▲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고문 ▲92년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공동대표 ▲93년 대한변호사협회장 ▲〃 환경운동연합 대표 ▲〃 부정방지대책위원장 ▲94년 한국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 ▲95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 ▲〃 시민운동지원기금 이사장 ▲〃 세계화추진위원 ▲〃 노사관계개혁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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