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4월6일은 서기 2000년의 D―1,000일. 21세기가 1,000일 앞으로 다가온 날이었다. 아직도 멀었느니라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새 밀레니엄이 코앞에 와 있다. 꿈의 세기가 현실로 가까이 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이날 자정 대축제를 열고 파리의 에펠탑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이 서기 2000년을 하루 하루 카운트다운하기 시작했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기척이 없이 적막하다. 어디에도 새 세기를 맞는 채비의 기색이 안보인다. 서기 2000년은 우리와는 전혀 무관한 것인가. 우리에게는 미래도 없는 것인가.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의 97%가 우리나라의 2000년에 대한 준비가 너무 없다고 지적했다. 사실 무슨 대비를 하고 있는 것같지 않다. 대국으로 가는 지표 하나 내세운 것도 없고 대구도의 청사진 하나 그려진 것도 없다. 미지의 세기에 우리가 처해야 할 위치도 나아가야 할 길도 모르고 있다. 하다못해 대원단의 축제를 위한 2000년 위원회같은 것 하나도 구성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D―1,000일에도 무감각이었다.
우리나라는 새로운 1,000년을 앞두고 왜 이렇게 노닥거리고만 있는 것일까.
현정부가 전향성 아닌 후향성이라는 것은 이미 평판이 나 있다. 현정권의 실패는 그 큰 원인이 과거지향에 있다. 이제와서 미래를 내다보고 싶어도 그럴 겨를이 없을 만큼 곤경에 처한 것은 처음부터 자꾸만 뒤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개숙인 정권이기 전에 고개 돌린 정권이었다.
개혁은 과거의 혁파요 개조다. 과거에 끌려다녀서는 성공하지 못한다. 개혁은 지나온 길을 청소하자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길을 청소해 나가자는 것이다. 정부는 뒷길을 쓸고 있었다.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개혁은 과거를 묻고 있을 일이 아니었다. 온 국민이 범죄자인거나 다름없는 과거를 가지고 단죄하겠다면 그 죄를 다 가둘만큼 큰 그물은 어차피 없는 것이다.
금융실명제만 해도 과거를 들추겠다고 국민들에게 겁을 준 것이 잘못이었다. 가령 가명·차명계좌가 그 이전까지는 멀쩡히 인정되었던 것인데 하루 아침에 자금출처 조사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니 동요할 수 밖에 없었다.
이른바 「역사 바로세우기」는 그 명분이 아무리 분명했더라도 이 또한 과거형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나간 역사만 역사인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역사도 역사다. 쓰여진 역사를 고쳐쓰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써야할 역사를 잘 써나가야 한다. 과거의 역사를 바로세우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역사를 바로 세워나갈 일이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지만 현재와 미래의 대화이기도 하다. 과거와 대화하는 것은 미래와 통화하기 위해서다. 과거와의 대화가 대화 아닌 전쟁일때 미래가 위협 받는다.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 하원에서의 연설에서 『만약 우리가 과거와 현재 사이에 싸움을 벌인다면 미래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과거와의 전쟁에 소일해왔다. 한보사태 등은 과거를 잘못 다스린 업보이면서 그 자체가 이번에는 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과거와의 전쟁이 되어버렸다. 이런 전쟁에 우리의 미래가 볼모로 잡혀 있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어서 과거로부터 탈출하는 일이다. 우리의 2000년이 언제까지나 과거에 발목잡혀 있을 수 없다.
역사에도 리듬이라는 것이 있다. 과거에 매이는 것은 역사의 리듬을 깨는 일이다. 돌부리에 발이 차이면서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로는 전진하기가 어렵다.
우리의 국사에 자꾸 뒤돌아보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추억의 역사가 무엇 무엇이던가.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는 역사 바로세우기의 역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후대에 와서 역사를 뒤집어 선대의 인물을 삭탈관직하고 부관참시 하거나 아니면 복위복권하는 사화의 역사였다. 앞으로의 1,000년은 앞을 내다보는 전향성의 국사라야 할 것이다.
서기 2000년을 바라볼 때다. 이제 1,000일도 남지 않았다. 새로운 세기의 국가상을 향해 전진하고 있어야 한다. 자칫하면 잃어버린 2000년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본사논설고문>본사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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