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반도 4자회담준비와 관련하여 가까운 시일안에 남북한과 미국의 3자준고위급회담을 제의해 온 것은 저들의 사정을 감안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북한은 한달전 4자회담설명회에서 대규모 식량지원을 조건으로 회담참석을 시사한 이후 한미 양국에 대해 꾸준히 식량지원을 타진해왔었다. 이번 준고위급회담제의는 4자회담의 성사 가능성을 높인 게 사실이다.1990년대 이후 잇단 감수와 홍수로 악화된 식량난은 「지상천국」이라던 북한을 「굶주림의 천국」으로 변모시켰다. 북녘 곳곳서 1∼2년째 식량배급이 끊기거나 평상시의 30∼20%로 감량되어 아사자가 속출하고 삼엄한 경비속에서도 탈북행렬이 꼬리를 물고 있다. 지난주국제적 십자연맹 관계자는 많은 주민들이 한두 숟가락의 양곡에 풀과 나무껍질을 넣은 죽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캐서린 버티니 세계식량계획(WFP) 사무국장은 올해 230만톤의 식량이 부족하며 6월말이면 완전히 바닥이 날 형편이라고 비참상을 전하고 있다.
유엔은 95년이래 3년째 각국에 대북 식량지원을 호소했지만 성과는 미흡하다. 현재 10만톤 이상의 대규모 식량을 줄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뿐이다. 그러나 일본은 북송된 수천명의 일본인 처들을 40여년간 단 한명도 자유왕래를 허가하지 않은 것과 70∼80년대 10여명의 여성납치 혐의에 대한 해명을 먼저 요구하고 있어 결국 줄 수 있는 나라는 한 핏줄인 한국뿐임을 저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이번 준고위급회담을 제의한 것은 한국으로부터의 식량지원을 겨냥했음이 틀림없다. 이번 남북한과 미국 3자실무회담서 한성렬 북한공사가 지난주 한국의 민간쌀지원 허용방침에 감사를 표하고 국제기구의 쌀모집에 적극 참여를 당부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실제 김일성 사망 3주기를 맞아 오는 7∼8월 김정일의 국가주석과 당총비서 등으로의 권력승계를 계획중인 북한으로서는 식량난을 서둘러 해소하지 않을 경우 김정일의 지도력과 위상은 결정적으로 추락된다는 점 역시 크게 고려했을 것이다.
정부로서는 이번 북한의 적극적인 자세변화를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북한의 「한국배제―미국과의 협의」 정책이 깨어져 당장 남북대화가 재개되는 것으로 흥분하는 것은 금물이다. 확고한 원칙에 따라 대응해야 한다. 즉 이번 2차 준고위급회담은 1차 설명회의 재판이 돼서는 안되며 4자회담의 의제와 일자 및 운영절차를 협의, 마련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또 식량지원은 결코 4자회담 성사의 전제조건이 될 수 없으며 회담을 진행하면서 화해와 신뢰회복의 분위기 조성과 관련, 식량과 긴급구호품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북한에 대해 4자회담은 결코 북한의 발목을 잡기 위한 것이 아니요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 보장, 그리고 쌀 지원은 물론 남북간의 공존공영의 방책을 강구하는 틀임을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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