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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함께 한 24년/이충일 우수독림가(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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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함께 한 24년/이충일 우수독림가(아침을 열며)

입력
1997.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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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묻혀 나무를 벗삼아 살아온 지 24년, 인생의 고개마루에 서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봅니다. 내세울 건 없어도 나무가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수십년, 수백년을 묵묵히 살아가듯 그렇게 살려고 애썼던 삶을 후회하지 않습니다.평북 강계가 고향인 저의 부친은 광복후 서울로 와 목재상 등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대다 60년대 초 이곳 강원 평창군 진부면에 정착, 나무 기르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서울서 대학다니던 시절, 방학은 으레 진부에서 났는데 부친은 무작정 저를 산으로 쫓아보내시곤 했습니다. 졸업후 친구들은 넥타이 매고 대기업에 취직할 때 저는 작업복 걸치고 산으로 들어왔습니다.

곁눈질 않고 일한 결과, 이제는 임야 305㏊에 낙엽송 잣나무 강송 등 50만 그루를 가진 「나무부자」가 되었습니다. 제 산 뿐아니라 20여년전만해도 황폐했던 우리의 산들이 울창한 숲으로 변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흐뭇합니다.

나무의 이로움이야 누구나 잘 아실겁니다. 나무는 살아서 우리에게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를 주고, 죽어서는 튼튼한 목재로 생활 곳곳에 쓰입니다. 이런 이로움을 누릴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땀을 흘려야 합니다. 심기만 하면 단기간내에 목재를 생산할 수 있다면 누구나 투자를 아끼지 않겠지요. 나무는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꾸는 일, 즉 육림사업이 더욱 중요합니다. 사실 그동안 식목일까지 만들어가며 심었던 나무들을 제대로 관리했다면 전국 방방곡곡이 푸르지 않은 곳이 없을 것입니다.

나무 가꾸기는 한해 한해 수확하는 농사짓기와 달라 짧게는 20년, 길게는 40∼50년을 바라보는 일이다 보니 사람살이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굴곡도 많고, 그래서 희로애락을 다 느낄 수 있습니다. 산에 묻혀 사느라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고 살았어도 하늘의 뜻을 안다(지천명)는 나이가 되니 나름대로 세상을 알 것도 같은 게 다 그 덕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려움이 참 많았습니다. 묘목을 심기에 적당한 시기는 3, 4월중 보름정도밖에 되지않아 이 때는 거의 산에서 살다시피 해야 합니다. 오죽하면 제 아내가 서울 친정서 둘째아이를 낳았을 때 그렇게 기다리던 아들을 얻었는데도 한 달이 넘도록 가보지를 못했겠습니까. 그렇게 심은 어린 나무가 비가 오지 않아 말라죽었을 때의 애통함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농촌 노동력의 고령화로 일손이 달리고 자금이 부족해 심은 나무를 제대로 가꾸지 못할 때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많았습니다.

10년전 부동산투기 붐이 이곳 산골까지 밀어닥쳐 산이고 논밭이고 다 팔고 떠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 돈으로 경기도쯤에 땅 1,000∼2,000평만 사두면 큰 부자가 될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잠시 유혹도 느꼈지만 『욕심부리지 말자. 부모에게 죄짓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나무는 들인 정성과 노력 만큼의 대가를 우리에게 안겨주는 가장 확실한 자원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엔 나무 가꾸는 환경이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정부는 묘목을 무상으로 나눠주는 등 조림에서 육림사업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임업인이 겪는 어려움은 많습니다. 특히 애써 가꾸어 놓은 나무들이 일부의 부주의로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저는 제가 그랬듯이 아들이 이 사업을 이어주기를 바랍니다. 올해 고3이 된 아들녀석에게 지난해 방학때 넌지시 물어보았더니 저도 아버지처럼 공대를 나와 사회생활 좀 하다가 가업을 이어받겠다고 말하더군요.

이제 나무 가꾸기도 몸으로만 하던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머리를 써야합니다. 저는 제 손으로 키운 나무를 가공할 수 있는 제재소를 운영해 소득을 높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 아들에게 자신있게 물려줄 수 있는 사업으로 키우기 위해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오늘(5일)은 식목일입니다. 나무 심을 계획들은 다 세우셨는지요.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면 작은 꽃씨라도 뿌려보세요. 그리고 산에 갈 때는 불조심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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