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첫 세대로서 살아오는 동안 몸으로 겪은 일들이 바로 우리의 현대사라고 생각하면 새삼 감회가 깊어진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부른 노래가 「새나라의 어린이」요, 세뇌 당할 정도로 들은 소리가 「국산품 애용」이고 「근검 절약」이며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였다.6·25, 4·19에서 10·26, 5·18까지 달력의 숫자들이 소용돌이 치며 역사를 만들어 왔어도 우리 세대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기본정신은 그런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민주도 좋고, 민주화도 좋지만 거창한 정치사적인 이슈보다도 우리의 생활을 지배한 가치는 첫세대로서의 사명감과 국산품 애용이 말해주는 감상적 애국심, 일하는 자만이 먹을 수 있다는 근로의욕, 잘 살아보자는 목표의식 등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자식을 키우면서도 그런 가치를 강요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러면서 소시민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가정교육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80년대에 들어 소비가 미덕이니 하는 못듣던 소리가 들려오고 외제상표가 쏟아져 들어오더니 잘 노는 것이 창조적인 삶이라며 여행이다 레저다 하며 나라가 온통 미친듯 날뛸 때 우리나라의 오늘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어야 했다.
또 왜들 그렇게 정치는 좋아하는지 우리같이 실학을 하고 소위 작품을 만든다는 속좁은 사람들로서는 알 수가 없다. 지금도 동창들 중에 누가 고위관리가 되었다거나 정치를 한다고 하면 얼마씩이라도 추렴을 하여 보태주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다. 순수한 우정이라지만 어려워진 친구에겐 별로 그러는 것 같지 않아 순수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오랜만에 강남 백화점에 들렀더니 공간이 시원해지고 인테리어가 세련되어진건 좋았는데 화장품부터 쓰레기통까지 외제일색이었다. 재벌들이 수출하던 손으로 수입에 앞장선다니 당연한 결과이리라. 친구들도 슬슬 외제차를 사고 청소년들은 벌써부터 외제상표라면 사족을 못쓴다. 개방화·세계화시대가 정신 나간 소비만능시대가 되어 버린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참담하지 않을까. 정신 잃지 않으려 발버둥치며 자식들 단속에 열을 올리지만 우리 세대도 어쩔 수 없이 점점 불감증에 빠져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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