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인은 서정시의 문법 안에서 삶의 구체성을 드러내고 자기 인식의 섬세함을 유지한 몇 안되는 시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는 형식적 파괴와 실험을 동원하지 않고도 서정시가 삶의 결 안에서 거듭 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탐문해왔다.이제 그는 5번째 시집을 내놓았다. 「바닷가의 장례」에서 그의 서정은 여전히 구체적이고 섬세하고 그리고 스산하고 수려하다.
이 시집에서 시인의 정직성은 희망과 허무의 틈에서 서성거린다. 거기에는 시인의 나이에 걸맞는 성숙의 표지들이 드러나 있다 「오래된 사원1」에서 시인은 한편으로는 <왜 나는 불혹도 지나 저 세미한 연기의 변화에나 집착하는지> 를 묻고 있고 <늙어버린 세상 속의 고요함> 을 보고 있다. 늙어버린> 왜>
그는 삶의 고단한 노역과 집착으로부터 유폐되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시인은 달관하지 않는다. 시인을 달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소함에 대한 집착과 몸의 욕망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생의 쓸쓸함을 받아들이는 강인한 그리움이다.
「내 물길로 오는 천사고기」에서 시인은 <수만리 먼바다를 돌고 오는 연어도 식당 한구석에 놓인 수족관 속 열대어의 유영처럼 겹쳐 보인다> 고 쓰고는 <투명한 벽에 진종일 부딪혔다는 생각 때문에 이 산장 저 작은 수족관 천사고기에게도 희망은 언제나 가정의 반대편이리라> 고 추정한다. 투명한> 수만리>
이 시적 성찰은 운명의 닫힌 구조에 대한 서늘한 깨달음을 동반한 것이다. 그 갇힌 구조로부터 달아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러나 시적 진실은 그런 운명의 형식에 대한 통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 불우의 조건들을 껴안고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한 지우지 못하는 연민 쪽에 자리한다. 그 연민은 그것이 향하는 대상과 시적 자아와의 거리를 무너뜨리고 인간존재의 깊은 연대감을 불러 일으킨다.
시인은 한편으로는 허술한 욕망을 노래하고 한편으로는 피할 수 없는 허무를 목격한다. 그러나 시에서는 어떤 선택도 유예된다. 적어도 시는 선택이 아니라 마음의 결을 따라가는 언어의 행로이기 때문이다. 그 망설임과 떨림과 껴안음을 우리가 시라고 부를 때, 그 안에서 만나는 것은 <마음이 풍경을 얻어 스스로의 완성으로 나아간 흔적> 이다. <이광호 서울예전 교수·문학평론가>이광호>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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