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는 현실을 TV는 놓치지 않는다/드라마로 코미디로 청문회중계로…TV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오늘의 정치 현실을 놓치지 않는다. 대권을 향한 움직임이 예상보다 일찍 가시화하고 한보사태 등 대형 정치사건으로 안방극장도 「정치의 봄」이다. 드라마로, 코미디로 보여지는 TV 속의 정치는 현실정치의 모방이자 풍자, 역설이다. 7일부터 시작되는 국회의 한보청문회 생중계는 TV의 정치바람을 더욱 실감나게할 것이다.
조선 개국초를 배경으로 대권을 노리는 이방원과 왕자들, 신하들 간의 갈등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는 KBS1 주말드라마 「용의 눈물」(연출 김재형, 극본 이환경). 정적을 견제하고 위기를 돌파하려는 음모, 왕권을 노리는 사람과 그 주변의 「킹메이커」 등 이합집산하는 각 정치세력의 움직임이 과거사지만 현재의 정치상황을 생각하게 한다. 드라마 제목에 등장하는 왕권을 상징하는 「용」이라는 단어. 지금의 각 대권주자들도 「용」으로 불리고 있다.
최근 내각제 논의가 정치권에서 수면 위로 부상하자 드라마는 「재빠르게」 신권정치를 구현하려는 정도전 세력과 강력한 왕권정치를 꿈꾸는 이방원 세력의 갈등을 부각하고 있다. 두 세력 사이를 오가는 이숙번은 지난달 30일 방영분에서 『정도전 대감의 뜻이 높고 크지만,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의미심장」하게 독백한다.
이달말께 등장할 「1차 왕자의 난」에서는 이방원 세력이 심야에 사병을 동원, 최대 정적인 정도전을 제거할 예정이어서 12·12 사태를 연상시킨다.
KBS드라마국 윤흥식 부주간은 『정치의 계절에 정치바람을 무시할 수는 없어 제작과정에서 고려를 많이 하지만, 최근 드라마 전개와 정치 현실이 비슷하게 흘러간 것은 기대 이상』이라고 말했다.
KBS2 수·목드라마 「욕망의 바다」는 한보의 흥망을 연상시킨다. 경영권을 빼앗긴 재벌그룹의 상속자가 모든 수단을 동원, 경영권을 탈환한 후 기업을 성장시키지만 결국 부도를 맞는 내용. 정치권 로비를 통해 성장한 재벌그룹이 로비가 문제가 돼 부도가 난다.
봄개편 이후 TV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시사코미디. KBS2 「웃음천국」의 「이무기의 꿈」, SBS 「이주일의 코미디쇼」의 「김형곤의 세상 돋보기 졸보기」 「여자가 여자다워야지」 등도 정치를 풍자한다.
SBS 「코미디 전망대」의 「전망대 당무회의」코너는 김동길 전국민당대표를 「당고문」역으로 「영입」했다. 차기 대선에서 집권을 노리는 한 정당의 당무회의장을 무대로 한 이 코너에는 『정치는 쇼니까 당명을 「쇼당」으로 하자』, 『당신은 전국구잖아. 돈이나 모아』 등 독설이 오간다. 기생집 「서울옥」을 무대로 하는 SBS의 「여자가 여자다워야지」코너. 서울옥의 「대표마담」 교체 소식에 『서울옥의 정신적 대표는 나야』라고 반박하자 『우리끼리 다투면 옆집 「충청옥」, 「호남옥」만 좋아한다』며 단합을 강조한다.
케이블 TV CTN은 올 12월 대선 예비후보로 꼽히고 있는 12명의 정치 역정과 정치적 견해 등을 보여주는 「한국의 정치가」라는 다큐멘터리를 5월5일부터 2주간 방영예정으로 제작중이다. 등장하는 사람은 여권의 김덕룡 김윤환 박찬종 이수성 이인제 이한동 이홍구 이회창, 야권의 김대중 김상현 김종필 이기택씨 등. 프로그램은 영상이력서, 시민들과의 거리인터뷰, 예비주자들의 하루 생활모습 등을 담을 예정.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TV 정치바람의 하이라이트는 7일부터 시작될 「한보청문회」 생중계. 방송가에서는 청문회 중계를 계기로 코미디, 드라마 등 각 프로그램의 정치풍자 내용과 강도도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청문회 중계가 5공 청문회 중계이후 최대의 「정치특수」라고 판단한 방송 3사는 중계차, 야외스튜디오, 컴퓨터그래픽 등 준비작업을 마무리했다. 무분별한 생중계를 지양하고 해설 및 기획프로그램을 다채롭게 편성하되 김현철씨 증언 등 클라이막스는 정규편성을 무시한다는 원칙이다.
그동안 TV는 「제1」 「제2」 「제3 공화국」 「모래시계」 등 정치드라마와 시사코미디, 5공청문회 중계 등으로 이미 한 두차례 정치바람을 탔다. 하지만 뒷북치기나 임의적 해석에 의존하는 엉뚱한 풍자나 지나친 희화화 등으로 비판을 받았다. 벌써 방송사의 보신주의로 시사코미디의 경우 일부 내용이 삭제되는 진통을 겪고 있다. TV와 정치,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각자가 독립적이어야 둘 다 살아남지 않을까.
◎TV와 정치 외국사례/후보토론 중계 등 큰 역할/TV 싫어하면 정치적 성공 힘들어
미국 프랑스 등 선진외국에서 TV는 정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뉴스를 통해서만이 아니다. 각종 시사프로그램, 풍자코미디, 정치광고, TV토론 등을 통해 정치와 TV는 서로를 활용한다. 그것은 긴장과 대립의 관계가 아니다.
영화배우 뺨치는 존 F 케네디의 백악관 진출이나 프랑스 드골의 퇴장에는 60년대 이후 급증하기 시작한 TV의 보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제 『TV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미국 프랑스 등에서 대통령 선거는 TV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방송은 크게 뉴스보도와 광고, 그리고 후보자 토론으로 나눌 수 있다.
주요 정당의 후보로 지명된 사람은 그 시점부터 일거수 일투족이 TV뉴스의 관심대상이 되고 유권자는 TV를 통해 후보의 됨됨이를 판단한다. 따라서 각 후보 진영은 TV를 통한 이미지 메이킹과 메시지 전달에 최선을 다한다. 클린턴은 부시의 전당대회 연설장면을 특수영상기법으로 변형시킨 광고를 지속적으로 내보내 부시의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선거에서 TV의 역할은 후보토론이 절정이다. 유권자들은 각종 이슈에 대한 후보자의 지식과 대응자세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TV토론을 통해 마음을 최종 결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시사코미디도 「성역없는 풍자」를 무기로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코미디는 코미디고, 정치는 정치다」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경우처럼 프로그램의 내용이 문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요 정치인들은 코미디 프로그램에 자신이 대상으로 나오길 기대하고 로비하는 경우도 있다. 풍자 프로그램에 선택되지 못하면 그만큼 정치적 영향력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프랑스 공영방송 F2가 매일 저녁 내보내는 「아부없음」, 민영 TF1의 「안녕, 우리들입니다」, 카날 플뤼스의 「꼭둑각시들」 등 코너는 신랄한 풍자와 높은 시청률로 유명하다. 미국의 케이블TV인 HBO는 토크쇼 「Mr. Show」에서 두 명의 가죽바지 외판원을 주인공으로 매회마다 국회의원과 기업인들을 비꼰다.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상원의원을 닮은 나무인형을 만들어 음탕한 춤을 추게 만드는 식으로 풍자한다.<박천호 기자>박천호>
◎전문가 진단/개성·이미지에만 치우친 TV 정치보도 경계해야
「TV 정치시대」라는 말이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들린다. TV의 정치보도가 선거의 결과는 물론 후보의 공천과정, 주요 정책의 결정과정 등 정치의 내용 뿐만 아니라 정치지도자의 기자회견, 청문회 방식 등 정치의 형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정치가 오히려 TV의 제작관행과 내적 논리를 수용하고 자발적으로 따라가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예컨대 「정치 9단」이라는 3김도 TV에 나올 때면 여자처럼 화장을 한다. 7일부터 시작하는 「한보청문회」도 만약 TV가 중계를 하지 않기로 했다면 각 정당의 특위 위원들이 지금처럼 5공청문회 녹화자료를 참고해가면서 질문 연습을 하는 등 열나게 준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TV 정치시대」가 민주주의 발전에 반드시 긍정적이냐 하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클 수도 있다.
민주주의가 유지되려면 정보로 무장된 비판적 시민의 존재가 필요하고, 또 이들이 정치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체제의 활동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비판적 시민의 존재는 공공문제에 관한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의 유통을 전제로 한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정보의 바탕 위에서 그들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출하고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있어야 한다.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역할이야말로 TV뉴스를 포함한 모든 언론의 존재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의 정치보도는 능력보다는 개성에, 내용보다는 이미지에, 본질보다는 스타일에, 복잡성보다는 단순성에 중점을 두고, 특히 현실을 이미지로 환원하고 그래서 이미지와 기호에 의해 결정되고 통제받는 일차원적 정치상을 그려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이번 한보청문회의 TV중계는 스포츠 중계하듯 해서는 안된다. 각 정당의 특위위원들도 인기에 영합해 한탕주의로 나갈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의혹을 풀어주는 역사적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그토록 인구에 회자되었던 5공 청문회 스타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조차 잘 알지 못한다. 실상과 괴리된 인기란 그렇게 허망한 것이다.<이민웅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이민웅>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