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연이은 대형부도와 경제적 부정부패사건으로 인해 이대로 국민경제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 하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관심은 한보사건 재수사, 국회청문회 등에 쏠려 있는 것 같다. 수사와 청문회를 통해서 원인을 가려내고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경제위기의 근본적 해결책이 못된다. 「사람의 나쁨」보다 「제도의 부실」이 경제난국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경제제도의 개선작업이 청문회에 묻혀 소홀히 다루어져서는 결코 안된다. 경제살리기, 경제체질개선 등 정작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서도 이제는 현장적용 위주로 구체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고칠 것인가.첫째, 법조문의 현장적용 규정이라고 할 수 있는 훈령 예규 고시 업무처리요령 등이 정비되어야 한다. 현장 규정의 보완은 인기없는 일이지만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 법조문중 애매모호한 부분도 개선되어야 한다. 「공익의 증진」등 불투명한 용어를 사용한 경우 공익의 증진이 무엇인지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경제법제가 실행에 옮겨지도록 벌칙규정과 인센티브규정을 구체화해야 한다. 강제적 실행을 유도하는 관련규정이 없으면 제도는 그냥 문서로 남는다. 강제적 실행을 유도하는 작동장치가 제도속에 내장되어야 한다. 관련 공무원의 실행책임을 명백히 하는 의무조항과 수혜자인 시민으로 하여금 이행부실을 쉽게 고발할 수 있는 권리조항을 동시에 두어야 한다. 벌금이 제도준수 비용보다 적으면 제도는 종이호랑이가 된다. 만들어진 제도는 철저히 실천되도록 해야 한다. 실천되지 않는 제도는 우리를 도리어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셋째,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경제법제 등 현실에 맞지 않는 낡은 조항을 개선해야 한다. 10년전에 훌륭했던 경제법제라도 오늘에 와서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수도 있다. 정부개입, 정부지원, 국내산업에 대한 차별적 대우 등 개발연대의 경제제도는 이제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한국사회가 워낙 급속하게 변해온 관계로 현재 1,400여개에 달하는 경제관련 법령중에는 아마도 새시대에 맞지 않는 규정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넷째, 경제운용이 정치로부터 독립될 수 있는 장치가 개발되어야 한다. 우리의 정치는 수준이 낮다. 수준이 높다고 하더라도 정치논리는 역시 경제논리가 아니다. 정치권의 영향력이 쉽게 작용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는 조항을 찾아내어 개선해야 한다. 가능한한 인허가사항을 등록사항으로 바꾸고 공공사업은 민영화해야 한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민경제를 걱정하는 것은 우리의 제도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너무 쉽게, 너무 많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다섯째, 경제제도의 국제화다. 지난 10년간 정보통신과 교통수단이 급격히 발달하여 시장경제의 국제화가 심화했다. 국제관행을 무시한 국내제도에 길들여진다면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은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우리의 무역규모가 국민총생산(GN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2%로, 일본(15%)이나 미국(17%)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우리 경제제도의 국제화는 그만큼 절박하다.
경제제도를 고치는 일은 마치 흙탕길을 보수하는 일과 같이 중요하다. 흙탕 길에서 옷을 더럽힌 행인의 「조심성 없음」도 나무라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동네사람들이 나와서 흙탕길을 보수하는 것이 더 기본적인 일이다. 제도개선 노력과 함께 국민의식개혁의 추진도 중요하다. 21세기 선진한국경제를 위해서는 흙탕길처럼 되어 있는 경제제도를 고치는 일, 그리고 국민경제의식을 바꾸는 일에 국력을 모을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그런 지도자가 나오게 하는 시민의식을 가진 국민이어야 한다.
6일은 「2000년의 D―1000」이 되는 날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낡고 왜곡되고 미흡한 우리의 경제제도를 고치려는 관심과 고칠 수 있는 지혜와 고치겠다는 의지를 결집시킬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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