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20일 일본에서는 국내 소프트웨어업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일이 터졌다. 무려 1,200억원어치에 달하는 국산 소프트웨어 수출계약이 이뤄진 것이다. 기업업무를 온라인으로 통합관리하는 소프트웨어인 그룹웨어를 들고 일본으로 건너간 핸디소프트 안영경 사장과 세계 최대 판금업체인 일본 아마다그룹회장간에 이뤄진 이날 계약건은 고작 300억원 남짓한 국내 연간소프트웨어수출규모의 4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안사장은 계약서를 서명하는 그자리에서 즉석 납품을 했다. 1,200억원어치물량은 안사장의 손가방에 들어 있었던 그룹웨어 소프트웨어 1카피. 플로피디스크 40장이 건네지면서 1,200억원어치 납품이 완료되는 순간이었다. 핸디는 디스켓 한 웅큼을 건네주며 1,200억원을 거둬들이게 됐다.컴퓨터 정보통신을 기반으로 한 정보산업이 유망분야로 급부상하면서 최첨단기술을 앞세워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벤처기업시대가 열리고 있다. 벤처기업은 더이상 화제거리가 되지 않는다. 벤처기업들은 이제 특정분야에서 갑자기 스타가 된 돌연변이가 아니라 전 분야에 고루 싹이 키워지면서 산업계의 「허벅지근육」과 같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
「위험성이 높지만 성공시 높은 수익이 예상되는 기술집약형 중소기업」. 벤처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최근들어 단순히 모험기업이라는 차원을 넘어 미래 국가경제를 이끌고 나갈 신경제주체로 확대되고 있다.
벤처기업위상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은 이들의 폭발적인 잠재력에 있다.
직원 100여명 남짓한 핸디가 1,000억원대가 넘는 수출을 디스켓 몇장으로 후딱 해치우는 파괴력은 정보산업계를 중심으로 한 벤처기업들이 중화학 기계 선박 등 산업사회의 주력업종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부가가치기업군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벤처기업은 81년 설립된 큐닉스컴퓨터가 효시. 창업 15년만에 매출 1,300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큐닉스의 뒤를 이어 85년 창업해 매출 1,000억원대를 자랑하는 의료기기전문업체인 메디슨, 비트컴퓨터와 태일정밀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어 80년대말 등장한 한글과컴퓨터를 필두로 핸디소프트 퓨처시스템 터보테크 건인 등 기술하나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벤처기업이 줄을 이어 등장했다.
90년대이후에는 삐삐하나로 3∼4년만에 매출 1,000억원대를 바라보는 팬택과 스탠더드텔레콤 등이 그 뒤를 받치고 있고 미국 반도체업계에서조차 신경쓸 정도의 높은 기술력을 과시하고 있는 C&S테크롤로지 등이 돌풍을 예고하며 벤처대열에 합류했다.
벤처기업이 국내 경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며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기존 기업과는 분명한 「스타일」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기술력과 도전의식을 갖춘 젊은 기업가들의 등장이다.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141개 회원사의 평균 연령은 40.5세로 이 가운데 30대가 60%. 이와함께 이들은 기업을 철저히 선진국형으로 운영하고 있다.
의료기기생산업체인 메디슨사의 결재는 항상 3단계를 넘어가는 예가 없다. 모든 결재가 전자결재로 처리되며 직원들에게 권한을 철저히 위임,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는 탄력적인 경영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사장을 포함한 직원들의 높은 도전의식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
도전의식의 배경에는 직원들에 대한 공평한 경제적 배분이 큰 몫을 하고있다. 건인 핸디소프트 터보테크 등이 스톡옵션제를 도입, 직원들에게 지분을 나눠주고 있는 것은 오너가 전횡을 휘두르는 재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하겠다.
벤처기업협회 문상인씨는 『벤처기업의 특징은 대기업보다 낫다는 생각과 분명히 성공한다는 확신이 넘치고 있다는 점』고 말했다.
80년대말 끝없는 추락속에 수퍼 301조를 들먹이며 울상을 지었던 미국경제가 마이크로소프트 넷스케이프 등 정보산업의 벤처기업들을 집중 육성하면서 우뚝 재기한 신화는 벤처기업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함을 웅변해주고 있다.
핸디소프트 안사장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도전의식만이 벤처기업으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고 말했다.<김광일 기자>김광일>
◎벤처기업 이란/아이디어·기술로 승부하는 ‘모험적’ 중기/틈새시장 개척 매출·순이익 성장률 높아
벤처(Venture)기업은 이름 그대로 자본력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로 승부하는 「모험적인」중소기업을 말한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소규모 자본과 기술집약형 사업으로 틈새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 매출액과 당기순이익면에서 높은 성장률을 나타내고 있는 신생기업을 통칭한다.
일반 중소기업과 다른 점은 지금까지 없었던 창의적인 제품, 서비스를 경쟁우위로 내세운다는 것. 창의적인 사업 아이디어는 성공할 경우 높은 이익을 가져오지만, 실패 위험도 높기 때문에 「벤처(모험)」라는 접두어가 붙었다.
미국에서는 흔히 「기술집약적 중소기업」의 개념으로 쓰이고 있으며, 우리정부는 신기술사업금융회사나 창업투자회사가 회사지분의 10%이상을 투자한 회사를 벤처기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편 자금력과 경영능력이 부족하지만 우수한 기술력을 지닌 벤처기업에 미래의 이익을 기대하고 투자하는 자금을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이라고 부른다.
세계적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가 경쟁력 우위를 점하는 시대다. 따라서 환경의 변화나 기술혁신에 재빨리 적응하여 그것을 상품화할 수 있는 순발력과 기업가 정신을 갖춘 벤처기업들이 탄탄하게 포진하고 있어야 국내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80년대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진 미국 경제를 되살린 주역도 마이크로소프트 선마이크로시스템즈 넷스케이프 등과 같은 벤처기업이었다. 최근들어 국내에서도 기술 하나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벤처기업들이 속속 등장, 희망을 주고 있다.<변형섭 기자>변형섭>
◎벤처기업 성공 10계명/도전할만한 비전·이념 제시해야/조직 정예화·탄탄한 인맥 필요/틈새 공략 새 마케팅 개발하라
벤처기업에도 성공의 조건이 있다. 「벤처경영―창업에서 초일류기업으로」라는 저서를 준비중인 경북대 이장우(41·경영학) 교수는 성공한 한국 벤처기업의 사례를 토대로 다음과 같은 「한국벤처기업 성공 10계명」을 제시한다.
①회사의 미래상을 분명히 하라.
목표와 비전이 있어야 회사의 방향이 보인다. 벤처는 자원이 없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원대한 꿈이 없이는 회사의 존재의의가 없다.
②유능한 인재가 모이도록 이념을 제시하라.
경제적 보상에 앞서 사원들에게 회사의 비전에 동참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함께 일할 사람들에게 인생을 걸고 도전해볼만한 가치와 이념을 보여줘야 한다.
③기술개발에 승부를 걸어라.
벤처기업이 살아남는 길은 기술적 경쟁우위뿐이다. 창조적 아이디어와 기술혁신에 따른 차별화야 말로 회사 전략의 핵심이 돼야 한다.
④가장 잘할 수 있는 「틈새」에서 시작하라.
자원이 제한돼 있고 초기 경쟁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작은 영역부터 시작해야 한다. 특유의 유연성과 혁신성을 최대한 발휘함으로써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⑤자금이나 인맥과 같은 외부자원과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라.
벤처기업은 물적 자원이 취약하기 때문에 외부의 자원을 적절히 끌어들일줄 알아야 한다. 출신 대학과 기술협력을 한다든가, 벤처캐피탈을 유치하기 위해 평소 탄탄한 인맥을 형성해놓는 것 등이 예가 될 수 있다.
⑥공격적 경영을 하라.
방어적 경영은 직원들의 의욕과 창의력을 감퇴시킨다. 어차피 벤처는 약자다. 약자에게는 경우에 따라서 강자에게 선제공격을 할 수 있는 과감성이 필요하다.
⑦혁신적 경쟁방법을 개발하라.
기존의 방법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새로운 마케팅전략이 필요하다. 이색적인 광고로 효과를 볼 수도 있고, 새로운 유통방식으로 주목을 받을 수도 있다.
⑧신바람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라.
신바람은 한국인의 열정을 끌어 모으는 원천이다. 사원들이 24시간을 일해도 불만이 없는 일터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⑨조직을 작지만 강하게 정예화하라.
벤처는 무조건 크기를 키우는 규모의 경제와는 맞지 않는다. 언제나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일당백의 정예조직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⑩경쟁우위를 장기적으로 축적하라.
위에서 열거한 전략들을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써먹고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일관성있게 시스템화해야 한다.<변형섭 기자>변형섭>
◎벤처기업인/터보테크 장흥순 사장/‘타도 파낙’ 기치내걸고 CNC 콘트롤러 국산화 성공 ‘쾌거’
지난 4∼5년간 공작기계의 핵심부품인 「CNC 콘트롤러」분야에서 숱한 화제를 뿌렸던 (주)터보테크(사장 장흥순·38)는 벤처기업중에서도 다소 특이한 케이스에 속한다. 대부분의 성공한 벤처기업이 정보통신쪽에 주력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터보테크는 대일기술의존도가 가장 심각한 기계분야, 그것도 기계와 공학의 핵심연결부품인 콘트롤러의 국산화를 목표로 성공을 거둔 유일한 업체이기 때문이다.
국내는 물론 전세계 CNC 콘트롤러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는 일본의 「파낙(FANUC)」은 2∼3년전만해도 공작기계분야에서는 마치 「점령군」과 같은 존재였다. 가격과 물량을 「떡주무르듯」 조정해도 불평 한마디 하지 못하고 돈주고 가져다 쓰면서도 온갖 「아쉬운」소리를 다해야 했던게 국내 공작기계의 현실이었다.
장흥순 사장을 비롯한 5명의 공학도가 KAIST 박사과정 시절이었던 88년 『파낙타도』를 기치로 내걸고 창업할 때 주위에서의 반응은 『미친 짓』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게 고작이었다. 대기업도 수없이 기술국산화에 도전했다 실패했고, 또 생산인프라라 할 수 있는 자본재산업에서 「애송이」공학도가 세계적인 초우량기업에 도전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었기 때문이다.
장사장도 『시장장벽이 이렇게 견고하고 높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분명히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대일기술종속도를 피부로 실감하지 못한게 결과적으로 오늘의 터보테크를 만들 수 있었으니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만든 제품을 인정해주지 않는 시장 풍토가 사실은 더 큰 문제였다. 국내에서는 포기하다시피한 제품을 중소기업이 만들었다는 것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은데다, 설사 품질을 인정하더라도 파낙으로부터의 불이익을 걱정해 아무도 터보테크의 제품을 선뜻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사장은 『파낙이 갖고 있는 100개 기술중 이제 하나를 빼앗아오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기계산업에서 파낙의 손아귀를 벗어나기는 아직 멀었다는 얘기다. 다만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공작기계산업에서 비록 CNC 콘트롤러 한 분야지만 파낙과의 맞상대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시킨 것만도 엄청난 성과라는게 장사장의 설명이다.
「기술자립」 「독립군」을 메인 카피로 한 터보테크의 TV 흑백광고처럼 기술독립을 이루고 해외에 기술군을 파견하는 것이 장사장의 꿈이다.
지난해 매출액 191억원에서 올해 400억원을 예상하고 있는 장사장은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무장돼 있다면 벤처기업은 골리앗을 넘어뜨리는 다윗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황유석 기자>황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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