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지하일 현대연극 기수 가라 주로/72년 ‘반골동맹’ 합동공연 이후 25년만에시인 김지하(56)씨와 일본현대연극의 대가 가라 주로(당십랑·57)씨가 25년만에 재회했다. 가라 주로씨는 서울의 우수마당극퍼레이드 참가차 내한했다. 첫 만남은 한국이 독재로 신음하던 72년 서강대에서 「반골동맹」이란 이름을 내걸고 「금관의 예수」와 「두 도시 이야기」를 공연하면서 이뤄졌다. 두 사람은 1일 하오 예총회관에서 예술관을 중심으로 정담을 나눴다.<편집자 주>편집자>
『같이 도망가자고 권유하던 사람(가라 주로)과 가지 않은 그(김지하)가 25년만에 만났다』 가라 주로씨의 소회다. 72년 합동공연 얼마 후 민주화운동으로 감금된 김지하씨를 찾아가 탈출을 권유하던 기억이 되살아난 때문이다. 김지하씨는 『마산요양원에 있을 때였다. 가라씨는 달러를 잔뜩 갖고 와서 「이 돈으로 배를 사서 베이징(북경)으로 탈출하자」고 했다. 나는 「나라를 사랑하니 그런 식으로 도망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날 밤 정보부원이 멀리서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는 바다에서 헤엄치며 술을 퍼마셨다』고 회고했다.
가라 주로씨는 67년 형식과 문명을 탈피한 천막공연을 선보여 전위연극의 기수로 널리 알려졌다. 『내 극단의 별칭인 「붉은 텐트」는 할머니의 속옷이다. 그 속옷으로 나는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았었다』고 이야기했다. 즉 붉은 텐트는 어머니의 자궁, 원초적인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는 김지하씨와의 첫 만남에서 「문화란 투쟁의 산물이다」라던 그의 말을 깊이 새기고 돌아갔다. 그는 『천막공연은 문화인이 되지 않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김지하씨를 만난 뒤 인간보다 경제가 중심인 이 시대에 문화란 그에 대항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첫 만남으로부터 스물다섯 해. 김지하씨에겐 형극의 70년대를 거쳐 생명사상에의 몰입,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며 학생운동권을 비판해 일으킨 논란 등이 있었다. 가라 주로씨는 『천막공연을 해온 것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거품경제가 절정에 달한 70∼80년대, 행복한 줄 착각하던 들뜬 표정의 관객을 어떻게 무대로 끌어들이느냐가 문제였다. 거품이 꺼져버린 지금 사람들이 불행해져서 나는 차라리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지하씨는 임진택 김민기 김영동씨 등 후배들과 다시 연극을 해 보려는 이 때에 가라 주로씨를 다시 만나게 돼 별다른 예감이 든다고 말했다. 김씨가 『나의 관심사는 동북아시아 생명공동체의 결성이다. 동북아의 놀이형식을 통해 핵, 공해 등 공동문제를 다룰 수 있다. 일본에도 갈 생각이다. 두 나라 국민에게 오랜 갈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를 심어주고 싶다』고 하자 가라 주로씨는 『꼭 초청하고 싶다』고 화답했다. 김지하씨는 이에 『일본엔 없는 중요한 공연형식상의 비밀이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올 가을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공연예술축제에서는 가라 주로씨가 김지하씨를 비유해 쓴 「맹도견」(73년작)이 그의 제자인 재일교포 연출가 김수진씨 연출로 공연된다.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의장 임진택) 주최로 개최되는 우수마당극퍼레이드에서 공연될 「바다 휘파람-건너온 해녀」는 제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해녀의 이야기다. 두 나라 국민의 정체성 해부에 관심을 기울여온 가라 주로씨답게 한일관계를 상징하는 이 작품을 참가작으로 결정했다(그는 재일동포 여배우 이여선씨와 한 때는 부부사이였다). 그가 이끄는 극단 가라구미(당조)는 3월29, 30일 제주에서 천막공연을 시작, 3∼5일 서울 성균관대에 이어 일본순회를 갖는다.<김희원 기자>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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