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공부하고 연주활동을 하면서 그동안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동양인으로서 서양음악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또는 『동양인으로서 서양음악을 어쩌면 그렇게 잘 연주하는가』였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음악은 2,000년동안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으며 이미 지역과 인종을 초월한 세계의 음악으로 자리잡았다. 더이상 동양인이 클래식음악을 잘 해석하고 잘 연주하는 것이 신기한 일이 아닌 시대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 앞으로는 아시아의 문화와 역사와 사상이 클래식음악의 변화와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동양이 서양 고전음악을 받아들인 것은 100년이 넘었으며, 오케스트라의 역사도 대부분 50년 가까이 되었다. 그런데도 동양의 오케스트라를 접할 때면 무언가가 막혀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나는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통해 그것을 극복해 보려 한다.
동양사람들의 교류는 언뜻 보기에는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와 언어가 다른만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바벨탑을 쌓은 인간의 오만함 때문에 인류는 말을 통한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음악은 말보다 더 큰 역할을 해낸다. 인종 종교 이념 신분을 초월해 모든 이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열고 마음과 마음끼리 맞닿게 하는 힘이 음악에는 있다. 역사의 고비에서 서로에게 아픈 상처를 주었던 동양 각국이 음악을 통해 공통의 문화를 만들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나아가 동양인으로 구성된 아시아필은 세계음악의 변화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시아필의 창단 연주를 통해 이런 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아시아 8개국에서 모인 100여명의 단원들이 1주일동안 연습하고 도쿄(동경)와 서울에서 5차례의 연주회를 갖는 동안 우리는 단순히 악보만을 읽은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었고 얼마나 가까운 친구가 되었는지 모른다. 음악인들의 이러한 우의는 아시아필의 역사를 만들어가면서 그 영역을 넓혀갈 것이다.
아시아필 창단의 또 다른 목적은 음악을 통해 얻은 기쁨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것이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그들의 이미지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듯 하다. 단원들도 오케스트라 활동을 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은 사회와는 무관한 존재이며 오로지 중요한 것은 연주를 위한 연습이며 그것도 연주하고 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듯 보인다.
그러나 오케스트라는 엄청난 유지비가 드는 어마어마한 조직이다. 엄청난 음악의 힘을 갖고 있는 조직이 자기만족적인 연주만으로 존립근거를 갖는 것이 내게는 안타깝게 여겨진다. 아시아필의 창단연주는 라이브음반으로 출반될 예정인데 마침 아시아필이 일본에서 창단연주회를 할 때 발생하였던 일본 바다의 기름 유출로 인한 피해자들을 돕도록 그 수익금을 돌리려고 한다. 음악의 사회환원이라는 점에서 아시아필이 그 모범을 보이자는 바람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목적도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교향악단의 대명제를 대신할 수는 없다. 아시아필을 통해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어느 나라에서건 음악인들이 추구할 것은 단 하나 「마음을 넓히고 서로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라는 나의 믿음을 실현해 나가려고 한다.
이렇게 좋은 뜻과 가능성을 가진 아시아필의 창단은 일본의 자금으로 시작되었다. 지금 우리 나라가 세계화로 나아가는 매우 중요한 시점에 서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 모두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중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음악의 힘과 문화의 저력을 세계인에게 과시할 수 있는 아시아필이야말로 그런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나아가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아시아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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