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말 뉴욕타임스 특파원으로 한국을 취재했던 헨리 스콧 스톡스씨를 만났는데, 그는 그 당시를 회고하다가 이렇게 말했다.『서울에 머물때면 내가 탄 차를 누군가 들이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다. 한국에서 취재하고 기사쓴다는 것 자체가 투쟁이었다』
78년 김영삼씨를 인터뷰했던 그의 기사가 문제가 되어 김영삼씨는 국회에서 축출됐고, 그로 인해 부산과 마산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그 와중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었으니, 그는 한국 현대사의 한 과정에 참여했던 생생한 증인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기사를 썼다는 그의 회고는 우리의 오늘이 있기까지 힘을 합쳤던 수많은 사람들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끓어오르는 분노로 나라가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분노의 핵심은 「배신감」이다. 한 택시기사는 이렇게 한탄했다.
『어떻게 세운 나라고 어떻게 이룬 경제발전인데, 대통령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듭니까. 월남에서 중동에서 피땀 흘리며 외화를 벌었던 사람들이 지금 어떤 기분이겠습니까. 군사독재아래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죽은 사람들이 지하에서 얼마나 슬퍼하겠습니까. 군출신 대통령들에게 당한 것도 분한데, 문민 대통령이라고 큰소리치던 사람에게 이렇게 당할 수 있습니까』
김영삼 대통령의 말기가 이처럼 비극적일 것이라고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치솟는 인기속에 문민시대를 열고, 서릿발같은 개혁의지로 사정의 칼을 휘두르고, 역사를 바로잡겠다면서 전직대통령들을 단죄하던 그가 어떻게 그 모든 가치를 스스로 짓밟게 되었는가. 1년도 안남은 임기를 과연 그가 버틸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팽배하고 있으니,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대통령과 국민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기 힘든 고통스런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의 하야로 나라가 더 큰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그를 도와야 한다는 소리가 일고 있지만, 지금 누구도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대통령은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져 있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비극을 바로 이해하고, 그 비극이 희극으로 끝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는것 뿐이다. 그에게는 시간이 없고, 다른 선택이 남아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의 비극은 그가 한평생 그 가치를 신봉하며 그것을 위해 투쟁했던 민주주의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됐다. 반독재 투쟁을 하다가 군사세력과 손을 잡고 3당합당을 할 때부터 비극이 싹텄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민주주의를 소리 높이 외쳤지만, 민주주의의 원칙에는 무감각했다. 상도동 자택에서 가솔을 통솔하던 방식, 연금상태에서 반독재 투쟁을 하던 방식, 선거캠프를 조직하고 운영하던 방식을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계속 사용했다. 자기 아들이 청와대 비서실에 발령도 받지않은 인물을 심었다 한들 아버지를 돕고 나라를 돕는다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국민의 의식이 성장한만큼, 세계와 나라가 변한 만큼, 대통령이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서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고 임기를 잘 마무리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그가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동안 개혁의 주체세력도, 일관된 철학도 정립하지 못한채 터뜨리는 개혁과 국면돌파용의 정치를 계속해왔기 때문이다.
1일 청와대에 모인 여야대표들은 『우리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쌓아올린 경제의 공든 탑이 지금 무너지려 하고 있으니 국민 모두가 다시 일어나 허리띠를 졸라매고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공든 탑을 가장 크게 훼손하고 배신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지금 그에 대한 분명한 자성이 있기 전에는 그 어떤 호소도 국민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지금 감옥에 갇혀있는 대통령들보다 한층 더 비극적인 대통령이다. 그래도 비극적인 대통령은 나은 편이다. 희극적인 대통령으로 끝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이제는 아들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훼손한 민주주의를 온전하게 복원하여 국민과 역사앞에 되돌리는 것, 그것이 비극적인 대통령의 마지막 할 일이다.<편집위원>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