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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기업 성덕수 사장(비즈니스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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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기업 성덕수 사장(비즈니스 스타)

입력
1997.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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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104일 파업 ‘삭발설득’/노사관계 모범기업 변신『노사는 회사라는 수레의 양바퀴입니다. 양바퀴가 서로 어긋남이 없이, 한 방향으로 굴러가야 비로소 수레는 제기능을 발휘합니다.』 31일 사단법인 바른경제동인회로부터 「올해의 바른기업인상」을 수상한 신광기업(주) 성덕수(49) 사장이 평소 좌우명처럼 강조하는 「노사론」이다. 노사가 공동운명체라는 이 평범한 진리는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그의 「체험론」이기도 하다.

42년 역사의 「신광표」형광등으로 잘 알려진 조명기기 전문업체 신광기업은 노사간 대립과 갈등이 극에 달했던 80년대말 여느 기업들처럼 혹독한 분규의 홍역을 앓았다. 87년 6·29선언 이후 대학운동권 출신의 위장취업자들이 중심이 돼 사내에 「강성 노조」가 결성된 뒤부터 회사는 87, 88, 89년 3년동안 연이어 파업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다. 특히 89년에는 「임금인상 30%」를 요구하는 노조원들의 농성으로 장장 104일동안 파업상태가 계속되면서 회사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까지 몰렸다.

임원들 사이에서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자는 여론이 들끓자, 성사장은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 파업중인 노조 집행부 간부들처럼 완전 삭발을 한 뒤 농성장 안으로 뛰어들어간 것이다. 그 안에서 파업노동자들과 함께 라면으로 끼니를 떼워가며 대화와 토론과 설득으로 몇날 몇일밤을 지새웠다. 『회사의 공멸은 막자』며 눈물로 호소하는 경영주와 『정당한 대우를 해달라』는 노동자들 사이에 수많은 얘기들이 오갔고, 그러는 사이에 양측을 가로막았던 마음의 벽은 하나둘씩 허물어졌다. 성사장의 용기있는 행동 덕분에 파업은 기적처럼 풀렸고, 신광기업은 도산 직전에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성사장은 『공권력을 통해 강제로 농성을 해제하면 조업은 손쉽게 재개할 수 있어도 그로 인해 닫혀진 근로자들의 마음문은 영원히 열 수 없다』며 『파업보다도 더 큰 후유증을 회사에 안겨줄 수 없었기 때문에 삭발까지 결행하게 된 것』이라고 당시를 회고한다.

아무튼 신광기업은 이후로 노사관계에 관한 한, 타사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모범기업으로 변신했다. 89년 당시 파업을 주도했던 운동권출신들은 지금 대부분 관리직 간부사원으로 승진했고, 경영주와 노조원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머리를 맞대고 회사문제를 토론한다.

뿐만 아니다. 비온후 땅이 더욱 굳어지듯 신광은 새로운 노사단합에 힘입어 매년 30%이상씩 초고속성장을 거듭, 현재는 연매출액 550억원(97년 예상)에 해마다 500만달러어치의 전구와 형광등을 수출하는 국내 제일의 종합조명기기 전문업체로 발돋움했다. 특히 이회사는 형광램프의 지름을 단축시켜 절전효과가 뛰어나고 조도·수명을 크게 높인 「에너지절약형 형광등」을 개발, 보급하는 등 첨단조명기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84년부터 창업자인 선친 성두현씨(87년 작고)의 바통을 이어받은 성사장은 『회사는 이익이 나면 일정 부분을 반드시 근로자와 공유해야 한다』며 『그래야 근로자들도 단순한 품팔이 노동자가 아니라, 사용자와 함께 이윤창출에 참여하는 「경영인」이 될 수 있으며, 그래야 우리기업과 경제도 살아난다』고 강조했다.<변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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