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쌀과 현금」은 지원할 수 없다는 정부의 방침이 바뀐 것은 4자회담과 황장엽 망명사건, 그리고 국내외의 대북 지원 여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북한이 황비서 망명을 예상과 달리 묵인하는 반응을 보인데다 4자회담 참석에 신축적 태도를 취하자 정부도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상징적 의미가 강한 쌀을 풀어 버린 것이다.
특히 기업 차원의 대북 지원은 이번에 처음 허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쌀이 풀리고 재계가 자금력을 바탕으로 대북지원에 나설경우 현재의 경색된 남북관계는 진전으로 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남한은 95년 쌀 15만톤 지원을 비롯, 상당한 규모의 곡물을 북한에 전달했지만 「대북 쌀 지원 불가 원칙」때문에 인도주의 차원에서 안팎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정부가 내세운 쌀 지원 불가 원칙의 근거는 95년 쌀 15만톤 지원이 쌀 수송선의 인공기 게양 등으로 오히려 남북관계와 국민정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지원된 쌀이 군량미로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굶주린 북한주민들을 지원하는데 있어 정치논리는 배제돼야 한다는 국제기구의 압박이 강했고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국내 일부 민간단체들은 공개적으로 정부정책에 반해 국제기구에 대북 식량 지원용 성금을 보냈다.
따라서 최근 4자회담 등에 관한 북한의 신축적 태도는 정부의 정책 전환에 좋은 명분이 됐다. 더욱이 북한은 최근 미국 뉴욕에서 남북한·미국 3자 접촉을 통해 식량 지원을 요청했다. 이는 곧 북한 당국이 우리 당국을 인정한 것, 즉 종전의 대남 당국 배제 전략으로부터의 「태도변화」로 받아들여 졌다.
시민단체들은 대체로 『환영하지만 만시지탄이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독자적으로 북한에 1억원어치 이상의 곡물을 지원했던 민족통일민주주의전국연합이 이달중 시민 모금운동을 계획하는 등 벌써부터 시민단체들의 대북 쌀 지원 움직임이 발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남한쌀이 곧바로 대규모로 북한에 전달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국내 쌀은 값이 비싸고 재고량이 충분치 않은데다 민간 모금액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무분별하고 경쟁적 대북 지원을 막기 위해 대한적십자사로 창구를 단일화하고, 정부 차원의 본격 지원은 북한이 4자회담에 참석한 뒤에 논의할 수 있다는 등의 원칙은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김병찬 기자>김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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