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태생―북한군 장교로 6·25참전―소련 유학과 망명―러시아에서 사망―고국땅에 영면.한반도의 근·현대사가 만들어낸 한 인간의 기구한 인생역정이다. 지난 1월7일 모스크바에서 69세를 일기로 타계한 유라시아대학 이사장 허진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유해는 3월27일 부인의 팔에 안겨 귀국, 고려대 병원에서 환장식이란 의식을 통해 고국친지들을 만난 뒤 봄기운이 완연한 가평군 지평리 양지바른 언덕에 묻혔다. 할아버지때 떠난 고국강산에 영면의 터를 잡기까지 꼭 한세기의 세월이 지나갔다.
그의 할아버지는 구한말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이다.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명을 건져보자고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만주로 쫓겨간 선각자의 손자가 태어난 것은 1928년 헤이룽장(흑룡강)성에서였다. 그 곳에서 소학교 교사생활을 하기도 한 허씨는 광복 1년후 독립투사 유가족 자격으로 북한에 들어가 민주청년동맹 창설에 가담했다. 6·25때는 23세의 정치장교(소령)로 참전하기도 했다. 인민군의 서울점령때 문화예술인들에게 「허동무」로 불리던 그는 전쟁중 북한정권의 배려로 모스크바 유학길에 오른다. 그러나 57년 동료유학생들과 함께 김일성 일인독재를 비판하는 의견서를 발표한 사건으로 소련에 망명, 죽을 때까지 그 곳에서 동포사회를 이끌어 왔다.
재일동포 작가 이회성씨의 르포소설 「유역」에는 3진이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한진 이진 두 친구와, 박진으로 묘사된 허씨 세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반김일성 의견서사건의 주동자인 세 사람은 형제처럼 믿고 의지하며 참되게 살자는 뜻으로 각자 이름을 「진」으로 바꾸었다. 같은 북한 유학생 신분으로 같은 사건에 연루돼 소련땅에 망명한 사정까지 똑같으니 친형제보다 진한 인연을 나눈 사이들이다.
3진중 한 사람이 죽어 유골로 고국에 돌아왔다. 한씨는 2년전 타계했으니 이제 한사람만 남았다. 죽음을 초월한 영원한 우정을 기원하고 싶다.<논설위원실에서>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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