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주치게 되는 걱정이나 불안감은 대체로 두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운행원리에 대한 무지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지진이나 일식을 보며 느꼈던 원시적인 불안감은 과학의 진보와 더불어 많이 해소되었으나 불확실성에서 연유하는 불안감은 발달된 과학의 힘으로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미래를 확신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불안감은 우리의 일상적인 경제활동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전통적인 경제학이론에서는 각 경제주체가 합리적인 기대와 반응을 한다고 가정하고 있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근거없는 불안감 같은 비합리적 요소가 훨씬 크게 작용한다.
파스칼이 그의 명저 「팡세」에서 인간의 참된 속성을 변덕, 권태 그리고 불안 등 세 가지로 묘사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경제주체의 행동에 불안감이 지나치게 개입되면 경제는 더 나쁜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 금융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80년 이후 전세계 국가 중 3분의 2가 크고 작은 금융위기를 경험하였다. 그 과정에서 많게는 국내총생산(GDP)의 17%(스페인)에서 작게는 3%(미국)까지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기의 발생원인은 거시경제의 불균형 확대, 금융제도의 취약성, 자본의 급격한 유출입 등 다양하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커다란 피해를 입은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은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감의 상실과 불안감의 확산이 위기를 더욱 증폭시켰다는 사실이다.
1929년 월스트리트를 진앙지로 하여 시작된 대공황이나 87년 미국에서 발생했던 주가폭락(블랙 먼데이)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금융시장에서는 특히 심리적 요인이 중요하다. 불안감은 전염성이 강하여 금융공황을 초래하고 금융시스템 뿐아니라 경제 전체에 심각한 타격을 줄 개연성이 높다.
요즈음 우리 경제를 보면 큰 폭의 경상수지 적자와 대기업의 잇따른 부도로 환율과 금리가 오르고 자금이 필요한 곳으로 흐르지 못하는 등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어 많은 국민이 불안해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불안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외환시장의 불안정은 앞으로 경상수지 적자폭이 줄어들 전망임에 비추어 머지않아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면에서도 일부에서 우려하듯이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의 경영상태가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발생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갖고 있는 불안감이 과장된 것일 수 있다는 근거는 또 있다.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경쟁과 자율이라는 시장원리가 자리잡아가는 변화의 노정에 서 있다. 이 과정에서 파생되는 갖가지 문제들은 그것이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우리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어서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실제보다 훨씬 더 강한 불안감을 가지기 마련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요즘같은 때는 언론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비관적인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언론은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국민은 심리적 평정을 되찾아야 한다. 우리는 지난 수십년간 이보다 더한 어려움도 거뜬히 극복해 온 저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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