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화학물질의 해악/북극곰·에스키모도 오염/인간의 정자수 감소 등 문명이기에 대한 경고/추리기법으로 쉽게 서술『지구상에 안전하고 오염되지 않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돼 충격을 던지며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도둑 맞은 미래」(Our Stolen Future)가 번역돼 나왔다(사이언스북스간). 인간이 뿌려대는 유독 합성 화학물질의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운 「순결한 땅」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주장을 이 책은 생생한 실례들을 들어 입증한다.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의 생식 전문연구자인 닐스 스카케벡은 92년 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1938년에서 90년까지 인간의 평균 정자 수가 거의 50% 가까이 감소했다는 것이었다. 유럽과 미국뿐만 아니라 인도 나이지리아 홍콩 태국 브라질 리비아 페루 스칸디나비아에서도 이 현상은 관찰됐다.
「도둑 맞은 미래」는 그 원인을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각종 합성 화학물질이 잔류, 인간을 포함한 생물체 내에 축적되고, 더구나 대물림해 유전됨으로써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오염사슬이다. 인간 욕망 실현의 수단인 화학물질이 오히려 인간의 멸실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문명에 대한 경고이다. 「인류의 종말은 핵전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생식기능 변이에 따라 아기가 더 이상 태어나지 않든가, 아니면 우리와 전혀 다른 종류의 아기들이 태어나든가 해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번역본은 한글 부제를 「당신의 정자가 위협받고 있다」고 달아놓았다.
최근 서울의 한 쓰레기소각장에서 주민들과 약속한 기준치 이상이 배출됐다 해서 문제가 된 다이옥신, PCB(다염화비페닐), 살충제 DDT 등 우리 주변에 합성 화학물질은 널려있다. 3명의 공동저자들은 최근 수없이 보고되고 있는 야생동물들의 생식기 결함, 행동 이상, 집단의 갑작스런 절멸은 50년대 이후 급속히 진행된 이들 물질에 의한 전지구적 차원의 오염 때문이라고 주장한다-50년대 미국 플로리다 해안에서는 대머리독수리의 수가 급격히 감소했으며 더욱이 2/3는 짝짓기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80년대 플로리다 아포프카 호수에서는 다른 곳의 경우 평균 90%에 달하는 악어의 부화율이 18%에 불과하다는 것이 조사됐다. 90년대초 스페인 해안에 나타난 죽어가는 돌고래 떼의 행렬은 프랑스 이탈리아를 지나 그리스까지 이어졌다.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한 곳으로 알려진 북극에 사는 곰의 쓸개에서는 먹이사슬을 거쳐 최고수준으로 농축된 호르몬 저해 화학물질이 발견되고, 에스키모의 체내에서도 고농축된 PCB가 발견된다….
책은 이러한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탐정소설이라는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저자의 한 사람인 동물학박사 테오 콜본(여)이 과학문헌을 조사하던 중 합성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실험실 연구와 야생동물 연구 결과, 인간 사례들을 차례차례 풀어나가는 것으로 흥미를 돋구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팽창 일변도인 우리 문명 전체의 구조를 바꿀 것을 제안한다. 인간의 욕망에는 반하지만, 에너지와 물자를 덜 쓰면서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덧붙여 역자 권복규(29·서울대의대 대학원 의사학)씨의 말처럼 열심히 돈 벌어 오래 살겠다고 눈치보며 사먹는 곰 쓸개에 호르몬 저해 물질이 가득하고, 공기 좋다는 곳에서 재배된 유기농 야채·자연산 물고기도 전지구적 규모의 오염에서 안전하지 못하다면, 이제 우리는 환경문제를 함께 사는 인류라는 시각에서 근본부터 다시 검토해야 할듯하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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